경찰교향악단의 애환
대부분 국내외 음대 출신 시골서 주로 대중음악 연주
"처음 트로트 연주땐 좌절 지금은 주민 열광에 뿌듯"
지난달 27일 오후 3시, 경기도 용인시 언남동 경찰대 대연주실에서 국립경찰교향악단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의무경찰들로 구성된 이 교향악단은 1981년 창단 이래 3500회 이상 관객 앞에 섰다. 청와대 영빈관에 설 때도 있지만 산간벽지 외딴 마을과 분교를 돌며 주민들을 위한 공연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클래식도 연주하지만 18번은 역시 장윤정의 '어머나', 박현빈의 '샤방샤방', 박상철의 '무조건'이다. 레퍼토리가 대중음악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전체 단원 가운데 보컬병 등 실용음악을 전공한 단원 12명을 제외한 나머지 77명이 현악·목관·금관·타악기 등을 전공한 국내외 음대생들이다.
독일 베를린 음대·오스트리아 빈 음대 등 해외 명문 음대 출신이 10명, 서울대·연세대 등 국내 명문 음대 재학생이 41명이다.
서울대 음대 이경선(44) 교수는 "단원 숫자와 학력, 수상 경력, 1년 연주횟수(150여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국내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KBS 교향악단·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에 다음 가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지휘자 강창우(48) 단장은 "매년 4~5회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뽑고, 평균 경쟁률은 10대 1 이상"이라고 했다. 이 오디션에 합격하면 의무경찰에 입대해 자동적으로 국립경찰교향악단에 배속된다. 호른 주자 김동균(23·서울대 음대 1년 휴학) 수경은 "군 복무를 하면서 음악도 계속 연주할 수 있어 남자 음대생이라면 누구나 이 자리를 노린다"고 했다. 단원들은 "18번 세 곡을 각각 100번 넘게 연주하면 제대할 때가 된다"고 했다. 악장 임홍균(27) 상경은 "지난 6월 한 야외행사에서 바이올린 주자 10여명의 악보가 세찬 바람에 날아갔다"며 "한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됐지만 모두들 자동으로 손이 움직이더라"고 했다.
단원들은 내무반 8개에서 한 방(40㎡·12평)에 10명씩 함께 생활한다. 오전 6시에 기상해 단체로 운동하고 내무반을 청소한 다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인연습실(10㎡·3평)과 합주실에서 연습한다. 대원들끼리 4~5명씩 팀을 짜서 수시로 연주대회도 연다. 육군으로 치면 '외박'이 걸린 축구대회에 해당한다.
단원들이 모두 음악 전공자라 선후배 관계가 역전되는 경우가 많다. 악장 임홍균 상경과 클라리넷 주자 주동우(30) 일경은 독일 베를린 음대 박사과정에 다니다 6개월 차이로 입대했다.
주 일경은 "그때는 제가 민간인이라 '홍균아, 미리 터를 잘 닦아놓아라' 했는데, 막상 입대하자 선임병인 '임홍균님'께서 '걸레 들고 침상 닦으라'고 하셨다"고 했다.
유럽에서 15년 넘게 살다 귀국한 박재홍(30·빈 음대 졸업) 상경은 "처음에는 모든 문장이 '그렇습니다' 아니면 '그렇습니까'로 끝나는 군대 말투를 몰라서 선임병에게 '네, 죄송해요'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본인은 물론 8살 연하의 동기인 박범기(22·서울대 음대 3년 휴학) 상경까지 '세트'로 고참들에게 야단맞았다.
첼로 주자 양지욱(29·독일 프라이부르크 음대 졸업) 일경은 "맨 처음 '어머나'를 연주했을 땐 평생 샌드위치만 먹다가 난생처음 된장찌개를 먹은 느낌이었다"며 "그때는 여태 쌓은 음악적 철학이 와르르 무너진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주민들이 열광할 때 뿌듯하다"고 했다.
비올라 주자 김기열(24·서울대 음대 4년 휴학) 상경은 "지난 7월 청주여자교도소를 찾은 경험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가기 전에는 '우리도 경찰인데, 과연 경찰이 잡아들인 사람들한테 우리 연주가 위로가 될까' 싶었어요. 한 재소자가 불쑥 무대에 올라오기에 '난동을 부리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난동은커녕 노사연씨의 '돌아돌아'를 흥겹게 부르며 제게 씩 웃기에 뭉클했어요. '여기 입대하길 참 잘했다' 싶었지요."
이날 밤 10시, 취침에 앞서 옥상 빨랫줄에서 속옷을 걷던 김동균 수경은 "집 떠나보니 '나 혼자 할 줄 아는 일이 없다. 참 철모르고 살았다' 싶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강 단장은 "음악인과 군인의 면모를 잘 조화시켜서 더욱 감동적인 연주로 전국 각지의 국민들께 봉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