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고선웅'을 만나러 가는 길

입력 : 2009.07.27 16:31

뮤지컬 '남한산성'의 극작가 고선웅

극작가에서 연출가로 변신한 고선웅
극작가에서 연출가로 변신한 고선웅

극작가에서 연출가로 변신한 고선웅은 지난해부터 극단 ‘마방진’을 이끌고 있다. 인터뷰는 고선웅이 최근 올린 작품 '들소의 달'(6월 7일까지, 마방진 극공작소)을 관람하고 공연 뒤풀이에 참석하여 그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마방진 창단작 '팔인' 이후 변화했을 그의 연극을 궁금해 하던 나에게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고선웅은 '들소의 달'이라는 작품을 통해, 한 사회부적응자의 성장과 고난 그리고 좌절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었다. 이러한 극작술은 낯선 것은 아니다. 고선웅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발사 박봉구'도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고,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웠던 작품 '성인용 황금박쥐'도 역시 비슷한 구조를 지닌 바 있었다. 넓게는 아베 코보의 작품을 각색했던 '모래여자'도 이러한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들에는 공통적으로 사회부적응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내면으로 침잠하는 인물이다. 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들은 사회의 정식 구성원으로 편입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파묻혀 사는 인간이다. '성인용 황금박쥐'의 왕기는 자신이 박쥐인간이라고 믿으며 밤에만 활기를 띠는 ‘미처 자리지 못한 어른’이고, '이발사 박봉구'의 이발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꿈꾸었지만 결국에는 정신적 동면에 빠져들며 세상과의 교류를 끊어버리는 ‘폐칩된 자아’형 인물이다. 따지고 보면 '모래여자'에서 모래 굴에 갇히는 남자 역시 내면으로만 침잠하려는 어떤 유형의 인물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터뷰는 '모래여자'의 개작 방식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평소 궁금하게 여겼던 '모래여자'의 결말부분 각색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고선웅의 대답은 간단했다. 소설 '모래여자'에서 소설가 아베 코보가 추구한 결말을 극적으로 살려내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소설 '모래여자'를 극 장르 '모래여자'로 각색했을 때, 자신이 시도한 방식이 아니면 결말의 효과를 무대에서 온당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설이 가진 장점을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한 변형이었고, 그러한 변형이 없었다면 극 장르로서의 '모래여자'는 갈등의 핵심을 놓쳐버렸을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그의 대답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는 않지만, 그의 대답이 소설과 극의 경계 혹은 차이를 인식한 자의 그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김훈 원작의 '남한산성'의 극적 변형은 어떠해야 하는가. 고선웅이 털어놓는 각색 향방은 다음과 같다. 그는 ‘오달제’라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고 말하고 있다(오달제는 삼학사의 한 사람으로,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결전을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전쟁포로로 끌려가 처형당한 인물이다). 김훈의 원작에서는 미미한 비중만을 차지한 인물이었는데,  고선웅이 인물을 중용하여 극적 갈등을 집약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렇다면 '남한산성'에서 극적 갈등을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 고선웅은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오달제가, 전쟁과 사상의 혼란 시기에 어떻게 자신의 입장(가치관)을 정립하고 또 그 입장에 따라 죽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따라서 주전파인 오달제는 주화파의 수장인 최명길과 정치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심지어는 플롯 상에서 최명길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명길을 만난 오달제는, 최명길이 가진 입장을 존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고, 최명길을 중심으로 한 주화파와 신념을 건 대결을 펼친다는 구상이다.

뮤지컬 '남한산성'의 극작가 고선웅
뮤지컬 '남한산성'의 극작가 고선웅
이것은 원작의 전언이나 소설적 얼개와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김훈은 이 작품을 통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고선웅은 어떻게 죽어야 정당할 수 있는가를 말하려고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차이는 고선웅이 가지고 있는 소설과 극(드라마)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고선웅은 극의 갈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중심 갈등을 집약하는 한 사람의 인물이 존재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극의 통념으로 보면, 주인공인 인물은 역사적 격변기의 중심 그러니까 다양한 입장이 교차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야 한다. '남한산성' 식으로 말하면, 주전파와 주화파의 입장이 교차하고 삶과 죽음의 견해차가 존재하는 ‘갈등의 중심’을 차지하고 번뇌할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해야 한다. 오달제가 최명길을 죽이러 가는 설정은 주전파의 입장을 강력하게 대변한 것이되, 그곳에서 오히려 최명길을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최명길의 의견을 청취하게 되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발견하고 그 다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달제의 내면에는 번뇌가 싹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각색 방향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생성된 번뇌가 역사 속 특정 인물의 번뇌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의 번뇌로 확산 심화되는 것이다. 더구나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역사적 구체성을 표면에 드러냈을 때, 관객들은 작품과의 소통을 부담스러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반 관객들이 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역사적 입장 속에서 고뇌하는 인물이겠지만,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선웅은 이를 위해 오달제의 정신적 변모의 이유로, ‘개인적 사랑’을 추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오달제는 매향이라는 인물을 만나 지조 있는 선비로 거듭난다. 사회와 역사에 대해 책임 있는 의식을 갖추지 못했던 자에서, 책임을 갖추고 자신의 가치관을 고수하는 선비로 변모하는 것이다. 또한 매향은 오달제와 남한산성에 함께 기거하면서 삶의 위기에서 오달제를 위로하고 때로는 자극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다. 두 사람의 고난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길은 역사 속의 상황을 극적 상황으로, 그리고 나아가서는 관객들이 발딛고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로 바꾸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남한산성'을 뮤지컬로 제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성적인 문체와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소설적 상상력을 풀어내고 있는 원작을, 어떻게 극적 상상력을 갖춘 무대 언어로 재조직할 것인가 하는 우려가 앞섰다. 게다가 예전에 고선웅이 시도했던 <모래여자> 결말 각색 방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고선웅은 나름대로 분명한 대본집필 방향을 견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갈등을 축약시켜 하나의 극적 중심으로 옮겨올 것인가”와, “이때 극적 중심에 놓일 인물의 내면적 변화를 어떠한 극적 계기를 통해 무대에 실현할 것인가.”


두 가지 난제를 현명하고 신실하게 해결해나간다면,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남한산성'의 이야기를 극적 갈등으로 통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갈등이 충분히 생성되었을 때, 우리는 뮤지컬이 뿜어내는 다른 매력들이 활성화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그러할 것이고, 극적 갈등을 몸의 언어로 표현해 낼 춤과 율동이 그러할 것이며, 연기자들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갈등과 고뇌의 연기가 그러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고선웅은, 연출을 맡은 조광화와 상당한 인연을 지니고 있었다. 여러 가지 형태로 공동 작업을 한 경험도 이미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두 사람의 협력 작업은 원활하게 이루어 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각색과정과 드라마적 갈등의 창조 여부이다. 원작이 각별하게 주목받은 작품이니 고선웅에게 지어질 압박감은 상당할 것이다. 따라서 원작의 각색 성패는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이 될 것이고, 전체 공연의 기조를 흔들 수 있는 핵심 사안이 될 전망이다. 고선웅이 이미 소설의 갈등과 드라마의 갈등을 구별하여 인지하고 있는 만큼, 그 어떤 각색 작업을 거치든 그 원류만큼은 보존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위에서 연출과 음악 그리고 춤과 관객의 열기가 결합된 연극 작품 '남한산성'이 건축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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