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代打)지휘' 한번에 인생이 바뀌었소

입력 : 2009.07.16 03:07

더블베이스 연주자 프랜시스, 스타 지휘자 돼 한국 공연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Gergiev)는 한 손에는 러시아 마린스키 오페라 극장을, 다른 한 손에는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거머쥔, 신세기 러시아의 '음악 황제'다. 두 단체를 동시에 이끌며 '차르(Tsar)'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대륙을 넘나들며 숨 가쁜 일정으로 지휘봉을 잡는 바람에, 리허설이나 공연에서 밥 먹듯이 늦거나 연주를 취소하는 '지각 대장'이라는 점이다.

2007년 1월 영국 바비칸 센터에서 열렸던 런던 심포니의 연주회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급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르기예프가 불과 12시간 전에 공연 취소 의사를 밝히자, 오케스트라는 '대타(代打) 급구'의 비상이 걸렸다. 찾아낸 후보는 다름 아닌 악단의 더블베이스 연주자 마이클 프랜시스(Francis·33)였다. 2006년 리투아니아 투어 당시, 갑작스럽게 잡힌 리허설에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을 훌륭하게 지휘했다는 걸 악단이 기억해낸 것이다. 프랜시스는 전화 인터뷰에서 "내 꿈은 언제나 지휘였기 때문에 더블베이스만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악보 전체를 공부하는 버릇을 들였다. 그 습관이 비상시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런던 심포니의 더블베이스 단원에서 일약 지휘자로 변신한 마이클 프랜시스./서울시향 제공
런던 심포니의 더블베이스 단원에서 일약 지휘자로 변신한 마이클 프랜시스./서울시향 제공

당시 연주회가 호평을 받으면서 더블베이스 단원인 동시에 지휘자로서 프랜시스의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같은 해 9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네덜란드 필하모닉을 지휘했고, 지난 5월에는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와 연주했다. 지금도 뉴욕 필하모닉, 스웨덴 방송 교향악단 등 명문 오케스트라에서 러브 콜이 잇따른다. 지휘자 게르기예프는 그에게 적극적으로 기회를 마련해주는 후원자가 됐다. 프랜시스는 "게르기예프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콜린 데이비스, 정명훈 등 런던 심포니를 찾아오는 명(名)지휘자들의 리허설과 마스터클래스까지 빼놓지 않고 참관한다. 이들을 보고 듣는 것 자체가 살아 있는 공부"라고 했다.

본업인 더블베이스와 지휘 가운데 어떤 것을 택할 것인지 묻자,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당연히 지휘"라고 했다. 31일 프랜시스는 서울시향의 지휘봉을 잡아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협연 리카르도 모랄레스)과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등을 들려준다.

▶서울시향 명협주곡 시리즈, 3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02)3700-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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