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몸짓과 소리… 그 강렬함에 숨죽인 일(日)관객

입력 : 2009.07.13 03:26

국립극단 '태(胎)' 도쿄 공연

공중에 매달린 삿갓들이 시야를 압도한다. 무대에는 종이옷을 입은 사육신(死六臣)들이 하얗게 쓰러져 있다. 비틀비틀 그들이 일어서고 천장 위로 삿갓들이 사라지면 연극이 시작된다. 때는 1455년, 어린 단종(장보경)이 숙부인 세조(김재건)와 신숙주(장민호) 앞에서 양위(讓位) 교서를 읽는다. 목소리가 천진해 더 슬프다. 사육신들은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국립극단의 《태(胎)》가 10~11일 일본 도쿄의 세타가야(世田谷) 퍼블릭시어터에서 공연됐다. 국립극장이 '국가 브랜드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2006년 내놓은 이 연극의 해외무대는 2007년 인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700석 극장을 가득 채운 일본 관객은 《태》를 통해 한국의 역사, 한국적인 몸짓과 정서, 장구·거문고 같은 한국의 소리를 만났다.

연극《태》는 참극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공중에 매달린 삿갓들은 죽음을 상징한다./국립극장 제공
연극《태》는 참극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공중에 매달린 삿갓들은 죽음을 상징한다./국립극장 제공

이 연극에는 죽음이 즐비하다. 그 상징적 소품이 삿갓이다. 여인들은 남편의 시체 앞에 삿갓을 내려놓는다. 모양새는 묘(墓) 같고, 쓰다듬는 손길은 저릿하다. "아~ 아~" 하는 구음(口音)이 사육신들을 일으켰다. 그들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종이옷(육신)을 여인들이 거두는 장면은 처연했다.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드는 종이옷의 질감과 자박자박하는 소리도 좋았다.

죽음은 질긴 생명의 끈(탯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다. 사육신은 삼족(三族)이 몰살당하는데 박팽년의 종(김종구)이 주인의 가문을 이으려고 자기 아기를 대신 죽인다. 오태석은 죽음 뒤에 바로 산통(産痛)을 이어붙였다. 고요한 무대에 긴장이 팽팽했고 일본 관객은 집중했다.

《태》에는 시청각적 자극이 많았다. 단종이 사약을 마실 때 옷에 번지는 죽음의 검은 물, 살생부가 적힌 두루마리를 5~6m씩 굴리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어명을 어기고 살아난 아기는 이름도 없다. 극의 마지막, 무대는 어두워지는데 아기를 잃고 실성한 종의 부인(권복순)의 노래가 들려왔다. 퇴장하지 못하고 떠도는 울음 같았다. "창지야, 창지야, 창지야…."

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연출가와의 대화' 시간에 관객은 절반이 넘게 자리를 지켰다. 이 연극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증거였다. 내용보다는 형식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태》를 쓰고 연출한 오태석은 "내 연극에는 생략과 비약이 많은데, 상상하며 그 빈틈을 메우는 게 보는 재미"라고 말했다. 이날 이 한국적인 연극을 완성시킨 건 뜨거운 관심을 보여준 일본 관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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