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골목길 벽화로 학점 받았어요"

입력 : 2009.07.02 04:57   |   수정 : 2009.07.02 07:49
지난달 23일 오후 1시30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교 정문 근처 한 골목길. 학교로 향하던 남자 대학생이 신기한 듯 골목 벽을 응시했다. "참 희한하다. 가까이서 보면 그냥 꽃이랑 나비인데 멀리서 보니 여자 얼굴이야."

혼잣말을 들은 강승완(남·26·경희대 미대 3년)씨가 "저희가 그리면서 원했던 게 바로 그런 착시효과"라며 씩 웃었다. 강씨 등 이 대학 미대생 78명은 이날 '골목길 벽화'로 학점을 받았다. 이들은 지난 1학기 동안 공공미술 수업 과제로 1호선 회기역~경희대 사이 골목길에 26개의 벽화를 그렸다. 일명 '회기동 프로젝트'다. 이들을 지휘한 이태호(남·58) 교수는 "학생들 사이에 등굣길이 너무 칙칙하다는 의견이 많아 수업 시간에 바꿔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학교주변 담에 작품을 담아낸 경희대 미대 학생들이 붓을 든 채 즐거운 표정으로 담벼락을 따라 걷고
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지난달 23일 학교주변 담에 작품을 담아낸 경희대 미대 학생들이 붓을 든 채 즐거운 표정으로 담벼락을 따라 걷고 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학생들은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려도 되는지 일일이 허락을 받았다. 경희초등학교 김외식(남·57) 교장은 "안 그래도 벽이 허전하던 참에 잘 됐다 싶었다"고 했다.

벽화 물감이 채 마르기도 전에 소나기가 퍼붓는 바람에 그림이 다 씻겨 내려가는 '재앙'도 있었다. 이수빈(여·24)씨는 "물감이 다 마른 뒤에 비가 내리면 지워지지 않는데…. 60%쯤 진척됐던 작업이 물거품이 됐다"고 했다.

2년간 살았던 하숙집 근처 주차장에 파스텔톤으로 자동차 그림을 그린 진청(여·22·경희대 미대 3년)씨는 "어두웠던 주차장이 환해져서 뿌듯하다"고 했다. 진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주차장 주인이 수시로 얼음이 둥둥 뜬 냉수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회기동 프로젝트'가 완료된 23일, 회기동에 17년째 살고 있는 주민 박장진(남·58)씨는 "우리 동네가 이렇게 밝게 보인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경희대 미술대학 학생들이 학교주변의 담벼락을 그림으로 색칠하며 주민들과 학생들로 부터 큰 호응을 얻고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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