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저편, 체호프의 숨소리가 들린다

입력 : 2009.06.25 03:15

모스크바예술극장,
내년 탄생 150주년 맞아 대대적 행사 준비

가난한 의사 출신인 체호프의 초상화.
갈매기가 지천이었다. 이 극장에는 무대막에, 출입문에, 문서들에도 갈매기가 새겨져 있었다.

지난 20일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가의 모스크바예술극장. 1898년 문 연 이 극장의 상징은 극작가 안톤 체호프(Chekhov·1860~1904)의 《갈매기》에 나오는 갈매기였다. 1899년 초연한 《갈매기》를 비롯해 《세자매》 《바냐 아저씨》 《벚꽃동산》등 체호프 작품들은 모두 여기서 첫 관객을 만났다. 러시아 연극을 대표하는 모스크바예술극장은 111번째인 2008~2009시즌, 여름철 비수기에도 순항 중이었다. 고골이 쓴 《옛 기질의 지주》와 유리 티니아노프 의 초연작 《기제(Kizhe)》를 공연한 이날도 객석이 매진됐다.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이번 시즌 마지막 공연은 《갈매기》다. 마르파 부브노바(Bubnova·51) 모스크바예술극장 박물관장은 "연출가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주창한 '배역을 사는 연기', 침묵의 미학을 보여주는 이른바 '체호프 포즈(pause)'도 이 연극에서 시작됐다"며 "체호프는 배우들의 성격과 습관 등을 염두에 두고 희곡을 썼기 때문에 무대가 살아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박물관에는 100년이 넘은 공연 포스터와 사진, 무대 의상, 무대 도구, 세트 미니어처 등이 전시돼 있었다. 실제 체호프가 썼다는 가방도 보였다. 부브노바 관장은 "《세자매》에서 세 자매가 언젠가 고생이 끝나고 모스크바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체호프가 만든 인물들에게는 강한 그리움 같은 것이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한다'는 철학의 뿌리다.

모스크바예술극장은 체호프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올 12월부터 《이바노프》를 공연한다. 연출은 지난해 한국에서 《갈매기》를 올린 유리 부투소프(Butusov)다. 모스크바가 자랑하는 '체호프 연극제'도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다. 이 극장 관계자는 "프랑스 아비뇽 축제에서는 러시아 박물관들이 참가하는 체호프 전시회가 열린다"고 했다.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갈매기처럼, 체호프는 여전히 인간 곁에 있다.

안톤 체호프의‘집’과도 같은 러시아 모스크바예술극장 앞 풍경. 세 개의 극장에서 날마다 다른 연극을 공연할 정도로 레퍼토리가 다양하다./모스크바=박돈규 기자
안톤 체호프의‘집’과도 같은 러시아 모스크바예술극장 앞 풍경. 세 개의 극장에서 날마다 다른 연극을 공연할 정도로 레퍼토리가 다양하다./모스크바=박돈규 기자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