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엔 '벽'이 없다

입력 : 2009.06.25 03:14

피아노·작곡·편곡 이어 오페라 지휘까지… 클래식계 만능맨 플레트네프

지난 20일 일본 도쿄의 NHK홀. 섭씨 30도를 바라보는 후텁지근한 날씨였지만, 3800여 석의 객석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러시아 명문 볼쇼이 극장이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을 연달아 사흘간 공연한 무대였다. 연출가 발레리 포킨은 별다른 색상 없이 무대를 2층으로 수직 구분한 뒤, 뚜렷한 조명 대조를 통해 한편의 그림자극 같은 효과를 빚어냈다. 흑백의 짙은 대비가 무대에 드리우자, 마치 카드놀이의 스페이드와 같은 환상이 펼쳐졌다.

무뚝뚝한 표정의 지휘자가 박수 속에 연단으로 등장하고 지휘봉을 들자, 러시아 특유의 강철 금관과 비극적 현악이 극장에 감돌기 시작했다. 피아노 연주와 오케스트라 지휘, 작곡과 편곡에 이어 최근 오페라 지휘자로 데뷔한 미하일 플레트네프(Pletnev)의 화려한 신고식 무대였다. 3시간 30분의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의 환호성도 무대 한복판에 올라온 플레트네프에게 집중됐다.

플레트네프는 21세 때인 1978년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피아니스트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소련의 개혁·개방 시기였던 1990년 러시아 최초의 민간 교향악단으로 꼽히는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RNO)를 창단하며 지휘를 겸업했다. 인터뷰에서 플레트네프는 "당시 많은 음악가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악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지휘를 한다는 사실이 낯설었지만, 민주적 변화의 시기였고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피아노와 지휘, 작곡과 편곡까지 겸하는 러시아의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지휘봉을 잡고 있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든 음악은 언제나 하나”라고 말했다./마스트미디어 제공
피아노와 지휘, 작곡과 편곡까지 겸하는 러시아의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지휘봉을 잡고 있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든 음악은 언제나 하나”라고 말했다./마스트미디어 제공
이듬해 플레트네프의 지휘로 발표한 이들의 첫 음반인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전 세계 평단의 절찬을 받았다. 위기가 곧바로 기회가 된 셈이었다. 플레트네프는 2006년 직접 지휘와 연주를 도맡으며,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9곡)과 피아노 협주곡 전곡(5곡)까지 잇달아 녹음하는 저력을 보였다. 그는 "음반사 측에 '지금은 내가 아직 살아 있지만, 내년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중요한 계획은 지금 하자'고 설득했다"며 웃었다.

플레트네프는 작곡가로서 비올라 협주곡과 첼로 소나타 등을 꾸준히 발표하고, 프로코피예프의 《신데렐라》를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편곡해서 동료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 연주하는 등 경계를 짐작하기 어려운 '만능 음악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그런 구분은 매니저나 언론인들이 하는 일이다. 나 자신은 삶이나 경력, 음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때로는 관객으로, 때로는 작곡가나 지휘자, 연주자로 음악을 즐기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휘봉을 잡고 있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든 언제나 음악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소련 붕괴 전인 1980년대 평양에서 독주회 초청을 받았다. 이틀간 체류 일정으로 방북(訪北)했지만, 정작 평양에 도착하자 김일성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조선은 하나다〉를 협연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사실상 명령이었다. "곡이 너무 까다로워서 힘들다고 했더니, 그럼 이틀이 아니라 2주간 머물러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날 당장 연주하겠다고 했지요. 다음 날 모스크바로 돌아가면서도 또다시 붙잡힐까 내심 불안했어요."

이 협연 뒤에 플레트네프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이 곡을 연주한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무사히 돌아와서 명피아니스트 호로비츠의 연주회에 참석한 것이 훨씬 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고 말했다.

▶플레트네프(지휘)와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29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02)541-6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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