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 미술가 이불씨
이씨가 요즘 추구하는 주제는 '나의 거대한 서사(Mon Grand Recit)'다. 실현되지 못한 유토피아에 대한 계획을 상상력과 섞어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이씨가 초기 대표작으로 꼽는 '화엄'은 생선에 구슬로 수를 놓은 후 비닐봉지에 담아 벽에 걸어놓은 작품이었다.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며 부패해가던 작품은 당시 미술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정의할까. 이씨는 "평생 해야 하는 질문이고 할 때마다 답이 다른데, 아름답다는 걸 느끼고 싶을 뿐 이성적으로 정의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위인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 읽으면서 "끝없는 탐구심을 갖고 드라마틱하게 사는 사람이 예술가"란 걸 발견한 후였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후 '낙태' 등 과감한 퍼포먼스를 시도해 '전사'란 별명을 얻었던 이씨는 1994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99년엔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2008년 프랑스 카르티에 현대미술관 전시를 비롯, 세계 주요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어해 전시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그는 "국내에선 급하게 작품을 보내달라는 경우가 많지만 외국에선 2년 전부터 일정을 짜기 때문에 미리 결정된 전시를 우선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다.
일찌감치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이씨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수많은 재능있는 작가들이 발견되지 않거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좌절하는데, 일찍부터 좋은 전시를 하게 돼 많은 기회를 누렸다"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최고의 행복은 "작업을 하다가 제대로 된 뭔가를 찾아내 보람을 느낄 때"이다. 그럴 땐 "뇌에서 마약과 흡사한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이씨는 작품활동을 한 지 20년이 넘은 요즘엔 "예전보다 더 끙끙거리면서 고통스럽게 작업한다"고 했다. 아이디어가 원하는 대로 실현되지 않을 때면 "좀 쉬면서 거리를 두라"는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매달린다. 그는 "수십장이든 수백장이든 계속해서 그려보면서 생각을 멈추지 않을 때 거기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만든 작품이 '경매'에 나가는 게 싫어서 "샀다가 곧 되팔아 이익을 남기려는 사람에겐 작품을 팔고 싶지 않다"고 했다. "미술품의 가치가 경매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다들 공공연하게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혁명을 꿈꿨던 부모 덕분에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았지만 그 또한 예술가에겐 힘이 됐다. 그는 "비를 맞은 사람은 더 이상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강인선라이브 '이불 편'은 12일 오후 9시50분 비즈니스앤에서 방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