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 공연장 밖 세상과 소통하다

입력 : 2009.06.11 03:41

'반 클라이번 콩쿠르' 르포
리허설·연주·인터뷰 등 하루 11시간 인터넷 생중계
네티즌들 채점·응원메시지 휴식시간엔 평론가 해설도

섭씨 34도를 넘나드는 미국 남부 텍사스의 포트워스. 시내 공연장인 바스 홀(Bass Hall)의 문을 열자, 태극기를 비롯해 중국·일본·이탈리아·불가리아 등 세계 각국의 국기가 복도에 나란히 걸려 있었다. 1958년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Van Cliburn)이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해 창설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결선 현장이었다. 이 콩쿠르는 지난 1962년부터 4년마다 열리며 미국 최고의 피아노 경연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대회의 결선에 오른 6명의 피아니스트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자, 공연장 안팎에 설치된 12대의 카메라도 부지런히 이들의 동선(動線)을 쫓아다녔다. 소년티가 채 가시지 않은 중국의 19세 장 하오첸이 브람스를 연주하며,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처럼 입으로 선율을 읊조리는 장면도, 붉은 원피스 차림으로 등장한 한국의 손열음이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명(名)지휘자 제임스 콘론과 거침없이 협연하는 대목도 카메라에 어김없이 포착됐다.

이들 6명의 연주에 박수를 보내는 건, 홀을 가득 메운 2000여 청중만이 아니었다.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세계 음악 팬들이 연주뿐 아니라 무대 뒤 인터뷰와 리허설까지 실시간으로 보고 듣고 즐겼다. 인기 참가자의 연주 때는 인터넷 방송(www.cliburn.tv)의 동시 접속자가 1만4000여 명까지 올라갔다. 휴식 시간에는 곧바로 공연장 한편에 설치된 부스에서 진행자와 평론가들이 연주를 평하며 '현장 토크쇼'를 펼쳤다. 네티즌들은 영어와 일본어·중국어·한국어 등으로 마련된 콩쿠르의 블로그를 통해 연주를 채점하고 이메일로 의견과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결선 당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있다. 실시간 인터넷 중계를 통해 전 세계 네티즌이 결선 현장을 함께 지켜보았다./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결선 당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있다. 실시간 인터넷 중계를 통해 전 세계 네티즌이 결선 현장을 함께 지켜보았다./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디지털과 쌍방향, 세계화를 화두로 올림픽 방송에 쓰이는 인터넷 중계 시스템을 도입해서 대회 17일 동안 하루 11시간씩 생중계했다. 콩쿠르는 골방에서 연습하는 것이며, 심사위원들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관념이 흔들리고 콩쿠르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세반 멜리키언(Melikyan) 반 클라이번 재단 홍보마케팅국장은 "더 많은 사람과 클래식 음악을 공유하는 것이 콩쿠르의 목표라면, 인터넷을 통해 그 접점을 넓혀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주자는 모든 걸 보여줘야 하지만, 대신 모든 걸 보상받을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녹음이나 영상 심사에 그치지 않고, 지난 1~2월 상하이(중국), 하노버(독일), 상트 페테르부르크(러시아), 루가노(스위스), 뉴욕과 텍사스(미국) 등 6개 도시를 직접 순회하며 예선 심사를 했다. 결선에서도 독주회 1차례와 협연 2차례 등 여느 콩쿠르의 3배에 이르는 연주 분량을 소화한다. 대신 1~3위 입상자에게는 똑같이 2만달러를 시상하며 미국 51개 교향악단과의 협연, 미국 120여 개 및 유럽 27개 페스티벌과 리사이틀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주 기회를 부여한다.

리처드 로진스키(Rodzinski) 반 클라이번 재단 회장은 "콩쿠르는 학교 시험장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무대에 설 수 있는 준비된 연주자를 가려내는 것이 우리 목표이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것은 의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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