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드레 프레빈(Previn)이 누군지 질문을 던지면, 백이면 백,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영화음악 작곡가, 영화배우 미아 패로와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의 전(前) 남편, 명(名)지휘자이면서 지금도 무터의 반주를 맡고 있는 클래식 피아니스트…. 놀라운 건 이 모든 답변이 정답이라는 점입니다.
프레빈은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계 유대인 집안 출신입니다. 10대 때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프랭크 시나트라의 파티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고교 졸업과 동시에 MGM 스튜디오로 직행해서 작곡·지휘·편곡을 도맡으며 '할리우드의 신동(神童)'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아직 소년티가 채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의 19세 때 첫 번째 영화음악인 《해가 떠오를 때(When the Sun Comes Up)》로 작곡은 물론 지휘봉까지 잡았습니다. 이어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와 《키스 미 케이트(Kiss Me Kate)》 등 50여편의 영화음악으로 4차례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프레빈이 철저하게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배워나간 '실전형 음악인'이라는 걸 뜻합니다.
세상이 그를 재즈와 영화음악 등 대중음악인으로 알고 있을 즈음인 1967년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며 본격적으로 지휘자의 길을 걷습니다. 지휘자 피에르 몽퇴가 83세의 나이로 런던 심포니를 맡았을 때, 프레빈은 틈틈이 노(老)스승에게 지휘를 배웠습니다. 프레빈은 "몽퇴 아래서는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다"고 회상합니다. 1964년 몽퇴가 타계하고 4년 뒤 런던 심포니 상임지휘자로 취임했으니, 스승은 준비하는 법뿐만이 아니라 악단까지 물려준 셈입니다.
모두가 그를 지휘자나 연주자로 여길 즈음, 이번엔 본격적으로 클래식 음악 작곡에 나섰습니다. 69세 때인 1998년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오페라로 써서 초연했고, 안네 소피 무터의 이름을 딴〈바이올린 협주곡〉을 쓴 건 2001년의 일입니다. 이달 초엔 두 번째 오페라 《밀회(Brief Encounter)》를 휴스턴에서 초연했습니다. 2006년 무터와 이혼하며 다섯 번째 결혼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그 뒤에도 멘델스존과 모차르트의 실내악을 함께 연주하며 '음악 동거'만은 끝내지 않았습니다.
1929년생인 프레빈의 80세 생일을 맞아 올해 기념 연주회와 음반 출시가 활발합니다. 지나칠 정도의 다재다능(多才多能) 때문에 지휘와 피아노 등 하나의 분야에서는 감점 요인이 없지 않았던 '르네상스 맨'이 프레빈입니다. 전문화와 분업이 미덕으로 정착하면서 음악계 역시 작곡·지휘·연주가 모두 별개의 분야로 나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올해 여든의 노장은 음악은 본디 하나의 길로 통한다는 걸 삶으로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