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4.23 03:14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20세기 현대음악은 과거로부터 급격한 단절이나 혁명으로 비치기 쉽다. 하지만 아비 없는 자식 없고, 짙푸른 물감도 쪽에서 나온다. 우리 시대의 음악도 '온고지신(溫故知新)'에서 출발했다는 걸,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이 진행하는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Ars Nova)〉는 포착했다.'옛것과 새로운 것'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21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 콘서트는 중세와 바로크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 작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47세의 독일 작곡가 요하네스 쇨호른은 바흐의 〈푸가의 기법〉을 재료로 삼아 한껏 비틀고 왜곡시키며 또 하나의 음악 실험을 벌였다. 마치 리듬과 음향만이 존재한다는 듯 피아노 한쪽을 두드리며 출발한 뒤, 바흐의 기본 선율을 고루 찢어서 비올라와 피아노·관악기에 나눠 맡겼다. 바흐의 악보에 고정돼 있던 음표들이 파편화·분절화되면서 '무중력 상태'에서 자유롭게 떠돌았다.
진은숙의 스승이기도 한 강석희의 〈평창의 사계〉는 독주(獨奏) 바이올린과 현악 합주(合奏)를 위한 편성부터 계절별 악장 구분까지 비발디의 〈사계〉와 똑 닮았다. 현대음악은 고전·낭만주의를 훌쩍 뛰어넘어 중세나 바로크 음악과 교감한다는 점에서 '격세(隔世) 유전'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만물의 소생을 표현하는 '봄'의 1악장부터 독주 바이올린(웨인 린)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면서, 격렬하고 난해한 흐름 속에서도 감정적이면서 묘사적 대목을 언뜻언뜻 내비쳤다. 웨인 린은 마치 암보로 소화하는 듯, 강한 자신감으로 작품을 대했다.
러시아 작곡가 슈니트케(1934~ 1998)의 〈합주 협주곡 1번〉은 민속 음악의 어법이 녹아 있는 1악장부터, 두 대의 바이올린이 똬리를 틀듯 격하게 맞물려가는 토카타(Toccata)의 2악장까지 작품 전반에 과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마치 노병(老兵)처럼 고전 역시 죽지 않고 모습만 감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이날 음악회는 '급진적' 외형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속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관현악 콘서트, 24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02)3700-6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