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 '안나 카레니나'

러시아 문학의 명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틱한 발레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단이 이번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로 내한한다. 2005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이듬해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안무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국내에 소개된 에이프만의 작품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셰익스피어의 '러시안 햄릿' 외에도 '돈 키호테' 'who's who' '차이코프스키' '붉은 지젤' 등이 있다. 그밖에도 그에게는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나 체홉의 '갈매기'같은 명작을 성공적으로 발레화시킨 이력이 있다. 특히 서정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차이코프스키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에이프만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음악을 사용한다.
에이프만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선명한 감정선을 드러낸다. 덕분에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인 접근보다 감성적인 접근이 한결 용이하다. 여자의 갈등, 남자의 욕망, 사랑의 열망, 이별의 아픔, 결별의 고통 등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무용수들은 저마다 단순한 육체의 몸짓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철학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정신의 몸짓을 형상화하고 있는 듯 하다. 그의 단어를 빌리자면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인 발레’인 셈이다.
이렇듯 에이프만은 고전 문학을 토대로 나름의 독특한 해석을 덧입혀 관객들이 전혀 새로운 창작품을 대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가장 안전한 장치를 쓰면서도 가장 위험한 활로를 택하는 그의 아이러니한 작업 방식이야말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으나 아무나 성공하기 어려운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서사적인 성격이 짙은 소설 작품을 에이프만이 그려낸 시적인 묵언의 몸짓으로 읽고 나면 관객들은 오랫동안 책장 속에 묵혀두었던 때묻은 문학 전집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진다. 전혀 다른 느낌의 고전을 대한 관객들에게는 문득 고전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원작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갈등을 안나와 그의 남편 카레니나, 안나의 정부인 브론스키의 삼각구도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안나의 도덕적인 의무감과 사랑에 대한 열정의 대조적인 모습을 흰색(순수), 검정색(어둠), 붉은 색(열정)의 드레스 색깔로 상징화했다. 주목할만한 장면은 안나가 추는 듀엣의 동작. 억압과 구속을 표현한 카레니나와의 듀엣과 달리 정부인 브론스키와의 춤은 삶에 대한 밝은 욕망과 기대로 충만해있기 때문이다.
8년 전, 보리스 에이프만이 처음 내한한 이후 그는 한국의 많은 관객들 사이에서 마치 공연계의 히딩크나되는 것처럼 꽤나 유명세를 누렸다. 그만큼 그의 드라마틱한 발레 작품들은 때마다 관객들을 기꺼이 감동시켰고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발레 한편으로도 며칠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무대에서도 감동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 '안나 카레니나'
일시 : 3월 27~29일 금8시, 토 4시, 일 3시
장소 : LG아트센터
문의 :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