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호주서 온 스태프들 "복제된 배우 원치않아"
지난 20일 서울 역삼동의 한 스튜디오. 가슴팍에 번호표를 붙인 소년 17명이 입을 모아 〈익스프레싱 유어셀프(expressing yourself)〉를 합창했다. 노래가 끝나자 이들에게 "마룻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채 같은 곡을 부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몸으로 내는 소리의 진동이 느껴져서일까. 소년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고 일어설 땐 '어우~'하고 엄살도 부렸다. 음악감독은 이어 "웃기는 춤을 추면서 노래해라" "엉엉 울면서 노래해라" 같은 주문을 계속 쏟아냈다.
여기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장. 소년들은 1차 오디션 지원자 300여명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빌리(Billy) 후보'들이었다. 지원자격이 '10~12세, 신장 150㎝ 이하의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이라서 눈길을 끈 이 오디션에서 지원자들은 아무것도 준비할 게 없었다. 호주에서 온 스태프들은 '반복과 변주'를 통해 지원자의 즉흥성과 잠재력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안무가는 소년들에게 손바닥으로 무릎 치며 뛰기, 팔 벌려 뛰기, 몸 비틀어 뛰기 같은 동작을 반복시켰다. 조금씩 형식을 바꿨고 "빨리!" "아주 느리게!" 등 속도에도 변화를 줬다. 발레 동작과 탭댄스도 마찬가지였다. 소년들의 티셔츠는 땀으로 젖어갔고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었다.
오디션 과정은 놀이에 가까웠다. 소년들은 함께 도형 만들기를 하면서 웃었고 표정을 확장·수축해야 할 때, 둥글게 서서 박수를 옆으로 전달할 때에도 신이 났다. 손에 공이 있다고 상상하고 던지기를 할 때는 여기저기서 "패스, 패스!"를 외쳐댔다. 던지고 받는 순간 흔들리는 몸, 변하는 표정 등이 다 심사 포인트였다.
영화로 먼저 나왔고 엘튼 존이 곡을 붙인 이 뮤지컬에서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 빌리는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지원서에 '바이올린 연주, 수영과 태권도, 탭댄스를 잘한다'고 적은 이혁(10)군은 "무대에서 뭔가를 표현하고 싶다"고 했고,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박준형(11)군은 "오디션 소식을 듣고 내 배역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모가 맞벌이라 할머니와 함께 지방에서 온 소년, 노래하듯 "뽑아주세요"를 외치는 소년도 있었다.
연출가 저스틴 마틴(Martin)은 "아이들은 로봇이 아니고 복제된 배우처럼 노래하고 춤추기를 바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안무가 톰 호그슨(Hodgson)은 "부끄럼을 타던 소년들이 오디션이 진행되면서 놀라운 에너지와 도전 정신을 보여줬다. 특히 노래를 잘했고 감성이 풍부했다"고 평했다.
제작사 매지스텔라는 3월에 부산·대구·광주에서 찾아가는 오디션을 열고 훈련 등을 거쳐 7월에 '한국의 빌리'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빌리 엘리어트》 한국 초연은 내년 8월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