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1.19 09:58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

Q : '마리화나'와 '강철왕' 모두 초연부터 봤지만 고선웅 표 '대사 빨' 때문에 여전히 숨 막히게 웃기고 그만큼 먹먹해지더라. '매일 모했다 적는 메모'며 비유가 꼬리를 무는 대사는 아무나 못쓸 텐데. 평소 말 수는 많은 편인가?
A: 내가 말이 좀 많지. 걷어 내기도 해야 하는데 하하. 연극에 관한 이야기처럼 흥분할 소재를 만나면 말을 멈출 수 없더라고.
Q : 예전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팸플릿에서 극본 고선웅이란 이름을 발견하고는 더 깜짝 놀랐다. 언어적 감각이 남다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A: 아마 웅변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8살 때 웅변을 시작해 5학년 때부턴 직접 원고를 썼거든. 그러면서 옆 사람에게 내 말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발성 같은 걸 본능적으로 체득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연극을 할 때 도움이 되는 모양이야. 광고회사를 다녔던 경험도 나름 도움이 될 테고.
Q : 한 인터뷰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자신의 괴리가 커서 직장을 그만두고 연극을 했다고 했다. 허나 분명 그 전부터 연극과 인연이 있었을 것으로 사려 되는데.
A: 중대 신방과를 다닐 때 연극반(영죽 무대) 생활을 굉장히 열심히 했었지. 졸업할 무렵 500만원이 걸린 연극제가 열렸고, 그 상금을 받아 동아리 연습공간에 덧마루를 깔아준 다음 연극판으로 나가리라 마음을 먹었었지. 그런데 연극제를 보러온 선배들 중 유명 광고회사 국장으로 있던 선배가 나를 눈 여겨 보고는 스카우트를 해온 거야. CF는 30초짜리 영화라며. 당시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거든. 그런데 일이 꼬여서 6개월 만에 쫑 냈지. (웃음) 내가 좀 그래. 아이디어도 과격하게 내고 모범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 스스로를 소셜 임포텐츠(social impotenz)라고 부르니까.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작가를, 기왕이면 극작가를 해야겠다 싶어 곧장 '희곡작법'이라는 책 한권을 사서 밤 새 읽고는 작품을 쓰기 시작했지.
Q : 아니 바로 희곡이 써지던가?
A: 써지대. (웃음) '수상기'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세 작품을 연달아 썼어. 그때는 컴퓨터가 없어 손으로 썼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래 100만 원 넘는 486컴퓨터를 18개월 할부로 산거야. 갚을 능력은 안 되고 결국 친구 소개로 한 광고이벤트 회사에서 이벤트용 연극 연출 아르바이트를 해 컴퓨터 값을 갚고는 그대로 눌러앉게 됐지. 한 3년을 착실히 일하던 중 가평 공연예술제라는 행사가 들어왔어. 덕분에 손진책 선생님도 만나 뵙고 다시 연극의 감흥이 깨어나나 싶었는데 예산 문제로 행사가 엎질러 진거야. 그 뒷정리만 두 달을 했어.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와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니 내가 왜 상관없는 아라비아 숫자를 누르고 있어야 하는가 심각한 회의가 들대. 이건 내 인생이 아니다싶어 박차고 나왔지. 당시 IMF 때라 내가 잘린 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 그렇게 무능한 사람 아니야. (웃음) 그러고는 신길동 옥탑방에서 희곡만 쓰기 시작했어. '성인용 황금박쥐'나 '이발사 박봉구'가 다 그때 쓴 작품이야. '강철왕'은 직장생활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로 썼던 시가 모티프이고.
A: 내가 말이 좀 많지. 걷어 내기도 해야 하는데 하하. 연극에 관한 이야기처럼 흥분할 소재를 만나면 말을 멈출 수 없더라고.
Q : 예전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팸플릿에서 극본 고선웅이란 이름을 발견하고는 더 깜짝 놀랐다. 언어적 감각이 남다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A: 아마 웅변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8살 때 웅변을 시작해 5학년 때부턴 직접 원고를 썼거든. 그러면서 옆 사람에게 내 말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발성 같은 걸 본능적으로 체득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연극을 할 때 도움이 되는 모양이야. 광고회사를 다녔던 경험도 나름 도움이 될 테고.
Q : 한 인터뷰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자신의 괴리가 커서 직장을 그만두고 연극을 했다고 했다. 허나 분명 그 전부터 연극과 인연이 있었을 것으로 사려 되는데.
A: 중대 신방과를 다닐 때 연극반(영죽 무대) 생활을 굉장히 열심히 했었지. 졸업할 무렵 500만원이 걸린 연극제가 열렸고, 그 상금을 받아 동아리 연습공간에 덧마루를 깔아준 다음 연극판으로 나가리라 마음을 먹었었지. 그런데 연극제를 보러온 선배들 중 유명 광고회사 국장으로 있던 선배가 나를 눈 여겨 보고는 스카우트를 해온 거야. CF는 30초짜리 영화라며. 당시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거든. 그런데 일이 꼬여서 6개월 만에 쫑 냈지. (웃음) 내가 좀 그래. 아이디어도 과격하게 내고 모범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 스스로를 소셜 임포텐츠(social impotenz)라고 부르니까.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작가를, 기왕이면 극작가를 해야겠다 싶어 곧장 '희곡작법'이라는 책 한권을 사서 밤 새 읽고는 작품을 쓰기 시작했지.
Q : 아니 바로 희곡이 써지던가?
A: 써지대. (웃음) '수상기'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세 작품을 연달아 썼어. 그때는 컴퓨터가 없어 손으로 썼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래 100만 원 넘는 486컴퓨터를 18개월 할부로 산거야. 갚을 능력은 안 되고 결국 친구 소개로 한 광고이벤트 회사에서 이벤트용 연극 연출 아르바이트를 해 컴퓨터 값을 갚고는 그대로 눌러앉게 됐지. 한 3년을 착실히 일하던 중 가평 공연예술제라는 행사가 들어왔어. 덕분에 손진책 선생님도 만나 뵙고 다시 연극의 감흥이 깨어나나 싶었는데 예산 문제로 행사가 엎질러 진거야. 그 뒷정리만 두 달을 했어.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와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니 내가 왜 상관없는 아라비아 숫자를 누르고 있어야 하는가 심각한 회의가 들대. 이건 내 인생이 아니다싶어 박차고 나왔지. 당시 IMF 때라 내가 잘린 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 그렇게 무능한 사람 아니야. (웃음) 그러고는 신길동 옥탑방에서 희곡만 쓰기 시작했어. '성인용 황금박쥐'나 '이발사 박봉구'가 다 그때 쓴 작품이야. '강철왕'은 직장생활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로 썼던 시가 모티프이고.

Q : 그렇지 않아도 '강철왕'을 보면서 '황금박쥐'가 떠올랐었다. 인물은 다르지만 처한 상황이나 작품의 메시지는 상당히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딘가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A: 맞다. 이발에 집착하는 박봉구도 황금박쥐를 동경하는 왕기도 외로워서 삐뚤어진 봉빈까지도 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능하고 세련되지 못했지. 하지만 그들이 가진 결함의 이면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거든. 그런 양면성을 강조하다 보면 연극적 신선함을 가진 장치들이 나오는 거야. 하지만 작품이라는 게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더라. 7년에 걸쳐 쓴 작품도 있고 13년 만에 어떻게 만들겠다는 확신이 섰던 <모래 여자>도 있으니까. 어떤 이야기를 쓰겠다는 것만큼 어떤 인물을 그려야겠다는 것도 내겐 중요한 문제야. 작가가 그런 고민 없이 시간에 쫓겨 작품을 쓸 때 판에 박은 듯 재미가 없는 캐릭터가 나오는 거지.
Q : 당시에 쓴 작품만 18편이라고 들었다. 대체 한 작품 쓰는데 얼마나 걸린 건가?
A: 한 달에 한 편 꼴로 썼어. 딸랑 작품 한 편 써서 대학로에 나갈 생각은 아니었거든. 작품이 있어야 기회도 오겠거니 한 10편쯤 써두자 싶었지.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때 단막극을 4개나 냈는데 그중 두 개가 후보에 올랐고 그 중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가 당선됐어. 그렇게 홀로 18개월 간 희곡을 붙들며 지냈던 시간이야 말로 내 평생 연극적으로 가장 집중했던 시간인 것 같아.
Q : 그건 이미 구상하고 있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뜻은 아닐까?
A: 그때는 이것도 써보고 저것도 써보자 나를 실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 어떤 연극이 이 시대에서 연극으로 이해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고. 오태석·이강백 선생님처럼은 될 수는 없을지언정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작품을 쓸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지. 그렇게 연극의 형식을 키워가다 보니 나만의 새로운 양식이 나오더라. 결국은 어떤 형식으로 연극을 지속해 나갈 것인가와 '극단'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에 고민이 집중됐지. 내 성향은 현실 즉 사실주의 안에 마술적인 것을 결합하는 이른바 '환상 리얼리즘'이더라고.
Q : 극단과 극장이 있으니 마방진을 통해 기존 작품만 다시 올려도 넘칠 텐데 매년 신작을 거르지 않는 이유가 있나.
A: 지금부터 추억을 까먹고 살 수는 없잖아. 추억을 까먹으며 사는 게 인생이라지만 경로당 가서나 까먹을 걸 마흔 살부터 까먹으면 일흔이 됐을 때 까먹을 추억이 없을 거 아냐. 보통 작가들이 큰 작품 하나 써놓고 그걸 덧대는데 반해 나는 양으로 보면 엄청난 분량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지. 완성작이 30편쯤 되는데 그걸 책으로 묶으면 몇 권 나올 걸. 아직은 책을 내서 잘난 척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희곡집 하면 떠오르는 밋밋한 표지의 희곡집을 내고 싶지는 않아. 어설프게, 대충 대충은 싫어. 하려면 예쁘게
Q : 마방진이란 이름 전에 원래 붙이려던 극단 이름은 '이빨과 심장'이라며?
A: '이빨과 심장'이라는 단어 의미는 좋으나 이름만 들어서는 그 극단이 뭐하는 극단인지 모르겠잖아. 내 나이도 있고. (웃음) 마방진이란 단어에는 힘도 있고 뭔가 진중함도 느껴지지 않나.
Q : '마리화나' '강철왕' '삼도봉美스토리'까지 너무 바쁜 거 아닌가?
A: 그러게. 작가나 연출 하나만 하면 편할 텐데 둘 다를 해야 하니까 머리가 아픈 거지. 나는 벌려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아플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 지금 하고 있는 작품들에 하나 더 추가 되었잖아. 성남아트센터 4주년 기념 뮤지컬로 <남한산성>을 올리는데 그 대본 작업을 하고 있어. 지난 4월부터 시작해 초고를 넘긴 상태야. 그런데 관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자문위원들과 논의도 해야 하고 뭐 하나 결제나는데 절차 까다로워 오래 걸리네.
Q : 정말 바쁘겠다. 그나저나 이번 '마리화나'는 마방진 배우들이 아닌 외부의 개성 넘치는 배우들로 채워졌더라. 특히 서주희와 오달수의 캐스팅은 의외였음에도 배우들 간의 합이 좋다는 걸 공연을 보는 내내 느꼈다.
A: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개성 강한 배우들 모아놓고 걱정이 왜 없었겠어. 그런데 서로 너무 즐거워하며 연습하고 알아서들 돈독해지더라고. 게다가 다들 나와의 공감대도 잘 이루고 있으니 좋지 뭐. 관객을 웃기는 건 화합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내가 제일 잘하는 게 그거야. "융화" 연극은 팀 에너지가 없으면 말짱 헛것이거든. 그래서 나는 일단 내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분위기 만들지. 배우들에게 날 믿고 가라. 일단 그럼 된다고. 참, 이번 공연이 특히 좋은 건 더 이상 안절부절 하지 않고 마음이 편하다는 거야. 나이를 먹은 탓인가. 그래서 웃음도 날라지고 장난기도 더 는 것 같고. 왜 맨 마지막에 배우들이 인사를 꾸벅 하는 부분 있잖아. 그건 자기가 연기한 인물에 대한 예의에서 비롯된 건데 그런 진지한 태도로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 그 연극은 살아있다는생각이 들어.
Q : '마리화나'도 그렇지만 주인공의 이야기에만 휩쓸리지 않고, 조연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이야기가 있더라. 그걸 만드는 건 당신이 가진 또 하나의 장기 같고.
A: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병사 1'이 있는 대본이야. 학교 다닐 때 배우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일까. (웃음) 극작가가 배우에게 대사 2줄만 줬다가도 막상 연습 때 너무 잘하면 대사가 5줄로 늘기도 하거든. 하물며 공연하는 당사자는 생면부지 인물의 인생 살아야 하는 건데 오죽 할 말이 많겠어. 내가 프로듀서 마인드가 강했다면 등장인물이 2~5명을 안 넘기는 작품을 만들었겠지. 잠재력 있는 젊은 배우는 너무 많으나 기회가 없으니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무대 설 기회 주고 싶어 하나둘 배역을 늘리게 되는 게지. 제대로 된 작품이며 제대로 된 제작환경이 없으니 참 딱한 노릇이야. 100만원 연극제 한다고 하면 뜻이 있는 이들이 몰리곤 하는데 제작비도 모자랄 판국에 쫑파티 할 여윳돈이나 남겠어. 나만해도 '마리화나'로 돈 벌었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초연, 앙코르 공연 모두 마이너스에 내 개런티도 없었는 걸. 그러다 영화 판권이 팔려 겨우 메웠지. 과연 연극인들이 연극만 고민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에잇, 이런 우울한 이야기 하지 말자. 소신을 가지고 연극을 만들다보면 분명 뾰족한 수가 생기겠지.
A: 맞다. 이발에 집착하는 박봉구도 황금박쥐를 동경하는 왕기도 외로워서 삐뚤어진 봉빈까지도 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능하고 세련되지 못했지. 하지만 그들이 가진 결함의 이면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거든. 그런 양면성을 강조하다 보면 연극적 신선함을 가진 장치들이 나오는 거야. 하지만 작품이라는 게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더라. 7년에 걸쳐 쓴 작품도 있고 13년 만에 어떻게 만들겠다는 확신이 섰던 <모래 여자>도 있으니까. 어떤 이야기를 쓰겠다는 것만큼 어떤 인물을 그려야겠다는 것도 내겐 중요한 문제야. 작가가 그런 고민 없이 시간에 쫓겨 작품을 쓸 때 판에 박은 듯 재미가 없는 캐릭터가 나오는 거지.
Q : 당시에 쓴 작품만 18편이라고 들었다. 대체 한 작품 쓰는데 얼마나 걸린 건가?
A: 한 달에 한 편 꼴로 썼어. 딸랑 작품 한 편 써서 대학로에 나갈 생각은 아니었거든. 작품이 있어야 기회도 오겠거니 한 10편쯤 써두자 싶었지.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때 단막극을 4개나 냈는데 그중 두 개가 후보에 올랐고 그 중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가 당선됐어. 그렇게 홀로 18개월 간 희곡을 붙들며 지냈던 시간이야 말로 내 평생 연극적으로 가장 집중했던 시간인 것 같아.
Q : 그건 이미 구상하고 있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뜻은 아닐까?
A: 그때는 이것도 써보고 저것도 써보자 나를 실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 어떤 연극이 이 시대에서 연극으로 이해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고. 오태석·이강백 선생님처럼은 될 수는 없을지언정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작품을 쓸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지. 그렇게 연극의 형식을 키워가다 보니 나만의 새로운 양식이 나오더라. 결국은 어떤 형식으로 연극을 지속해 나갈 것인가와 '극단'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에 고민이 집중됐지. 내 성향은 현실 즉 사실주의 안에 마술적인 것을 결합하는 이른바 '환상 리얼리즘'이더라고.
Q : 극단과 극장이 있으니 마방진을 통해 기존 작품만 다시 올려도 넘칠 텐데 매년 신작을 거르지 않는 이유가 있나.
A: 지금부터 추억을 까먹고 살 수는 없잖아. 추억을 까먹으며 사는 게 인생이라지만 경로당 가서나 까먹을 걸 마흔 살부터 까먹으면 일흔이 됐을 때 까먹을 추억이 없을 거 아냐. 보통 작가들이 큰 작품 하나 써놓고 그걸 덧대는데 반해 나는 양으로 보면 엄청난 분량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지. 완성작이 30편쯤 되는데 그걸 책으로 묶으면 몇 권 나올 걸. 아직은 책을 내서 잘난 척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희곡집 하면 떠오르는 밋밋한 표지의 희곡집을 내고 싶지는 않아. 어설프게, 대충 대충은 싫어. 하려면 예쁘게
Q : 마방진이란 이름 전에 원래 붙이려던 극단 이름은 '이빨과 심장'이라며?
A: '이빨과 심장'이라는 단어 의미는 좋으나 이름만 들어서는 그 극단이 뭐하는 극단인지 모르겠잖아. 내 나이도 있고. (웃음) 마방진이란 단어에는 힘도 있고 뭔가 진중함도 느껴지지 않나.
Q : '마리화나' '강철왕' '삼도봉美스토리'까지 너무 바쁜 거 아닌가?
A: 그러게. 작가나 연출 하나만 하면 편할 텐데 둘 다를 해야 하니까 머리가 아픈 거지. 나는 벌려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아플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 지금 하고 있는 작품들에 하나 더 추가 되었잖아. 성남아트센터 4주년 기념 뮤지컬로 <남한산성>을 올리는데 그 대본 작업을 하고 있어. 지난 4월부터 시작해 초고를 넘긴 상태야. 그런데 관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자문위원들과 논의도 해야 하고 뭐 하나 결제나는데 절차 까다로워 오래 걸리네.
Q : 정말 바쁘겠다. 그나저나 이번 '마리화나'는 마방진 배우들이 아닌 외부의 개성 넘치는 배우들로 채워졌더라. 특히 서주희와 오달수의 캐스팅은 의외였음에도 배우들 간의 합이 좋다는 걸 공연을 보는 내내 느꼈다.
A: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개성 강한 배우들 모아놓고 걱정이 왜 없었겠어. 그런데 서로 너무 즐거워하며 연습하고 알아서들 돈독해지더라고. 게다가 다들 나와의 공감대도 잘 이루고 있으니 좋지 뭐. 관객을 웃기는 건 화합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내가 제일 잘하는 게 그거야. "융화" 연극은 팀 에너지가 없으면 말짱 헛것이거든. 그래서 나는 일단 내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분위기 만들지. 배우들에게 날 믿고 가라. 일단 그럼 된다고. 참, 이번 공연이 특히 좋은 건 더 이상 안절부절 하지 않고 마음이 편하다는 거야. 나이를 먹은 탓인가. 그래서 웃음도 날라지고 장난기도 더 는 것 같고. 왜 맨 마지막에 배우들이 인사를 꾸벅 하는 부분 있잖아. 그건 자기가 연기한 인물에 대한 예의에서 비롯된 건데 그런 진지한 태도로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 그 연극은 살아있다는생각이 들어.
Q : '마리화나'도 그렇지만 주인공의 이야기에만 휩쓸리지 않고, 조연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이야기가 있더라. 그걸 만드는 건 당신이 가진 또 하나의 장기 같고.
A: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병사 1'이 있는 대본이야. 학교 다닐 때 배우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일까. (웃음) 극작가가 배우에게 대사 2줄만 줬다가도 막상 연습 때 너무 잘하면 대사가 5줄로 늘기도 하거든. 하물며 공연하는 당사자는 생면부지 인물의 인생 살아야 하는 건데 오죽 할 말이 많겠어. 내가 프로듀서 마인드가 강했다면 등장인물이 2~5명을 안 넘기는 작품을 만들었겠지. 잠재력 있는 젊은 배우는 너무 많으나 기회가 없으니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무대 설 기회 주고 싶어 하나둘 배역을 늘리게 되는 게지. 제대로 된 작품이며 제대로 된 제작환경이 없으니 참 딱한 노릇이야. 100만원 연극제 한다고 하면 뜻이 있는 이들이 몰리곤 하는데 제작비도 모자랄 판국에 쫑파티 할 여윳돈이나 남겠어. 나만해도 '마리화나'로 돈 벌었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초연, 앙코르 공연 모두 마이너스에 내 개런티도 없었는 걸. 그러다 영화 판권이 팔려 겨우 메웠지. 과연 연극인들이 연극만 고민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에잇, 이런 우울한 이야기 하지 말자. 소신을 가지고 연극을 만들다보면 분명 뾰족한 수가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