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홍성훈, 유럽 최고 오페라 무대서 주역

입력 : 2009.01.19 03:23

라 스칼라 극장 공연작 '돈 카를로'

기회는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온다.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테너 홍성훈(36·사진)씨가 유럽 최고의 오페라 무대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주역을 맡았다. 그는 지난 11일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에서 주역 돈 카를로 역을 불렀다.

당초 이 배역은 홍씨의 몫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이 오페라 공연은 미국인 테너 스튜어트 네일(Neill)과 이탈리아 테너가 함께 소화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개막 한 달 전을 앞두고 극장측에서 이탈리아 테너의 퇴출 결정을 내렸고, 홍씨에게 전화 연락이 왔다.

라 스칼라 극장은 푸치니의 《나비 부인》과 《투란도트》, 베르디의 《오텔로》와 《나부코》 등 주요 오페라를 세계 초연했던 역사적 장소로 이름 높지만, 성악가의 노래가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서슴없이 야유를 퍼붓는 관객으로도 악명 높다.

"사실 이 극장에 4~5차례 오디션을 보았지만, 인연이 없었는지 무대에 서기 직전에 무산되곤 했어요. 기대를 안 했는데, 다급하게 연락이 온 바람에 무대 연습도 못하고 배역을 맡게 된 거죠." 홍씨는 "다행히 11일 공연 때는 밀라노 팬들의 야유는 없었다"며 웃었다.

경희대 음대를 졸업하고 서울시합창단 단원으로 5년간 활동했던 홍씨는 31세에 뒤늦게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다. 그는 "사업을 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가 설득해서 같이 떠났다"고 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시립 음악원 등에서 수학한 그는 2004년 비오티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기회를 잡았다. 홍씨는 "이전까지는 오페라 무대에 서더라도 1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콩쿠르를 계기로 여러 극장에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보았고 출연 기회도 늘었다"고 말했다. 2005년 이탈리아 파르마 극장에 데뷔했고, 피렌체와 트리에스테 등 이탈리아 주요 오페라 극장에 서다가 이번에 라 스칼라에 데뷔했다.

"유럽에서 함께 무대에 서는 성악가들은 대부분 20~30년 경력을 지닌 40~50대예요. 제가 30대 중반이라고 하면 첫 반응은 '아직 어리네'라는 것이에요."

올해 미국 필라델피아와 스페인 마드리드·빌바오 등에 서며 연말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주빈 메타의 지휘로 베르디의 《운명의 힘》을 부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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