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봉사가 눈뜰 일이네

입력 : 2008.12.18 03:20

이 불황에… 마당놀이 '심청' 고사상에 돈 놓는 사람들 줄을 서
작년보다 2~3배 늘어… "IMF때도 참여 관객 많아"

마당놀이《심청》에서 심봉사(윤문식·왼쪽 끝)가 눈을 뜬 장면. 오른쪽 끝은 뺑덕어멈 김성녀다. /극단 미추 제공
마당놀이《심청》에서 심봉사(윤문식·왼쪽 끝)가 눈을 뜬 장면. 오른쪽 끝은 뺑덕어멈 김성녀다. /극단 미추 제공
돼지머리는 한입 가득 배추잎(1만원권)을 물었다. 돌돌 말은 지폐를 콧구멍에 꽂는 것으로도 모자라 시루떡 위에도 돈이 떨어졌다. 객석에서 누가 말했다. "저거, 돼지 입 찢어지네…."

마당놀이 《심청》(배삼식 작·손진책 연출)을 여는 고사(告祀) 풍경이다. 지난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텐트극장. "새해에 꼭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으신 분들은 참여하시라"는 꼭두쇠 김종엽의 말이 떨어지자 관객 30여 명이 무대 한쪽 제사상 앞으로 올라왔다. 절을 하고 저마다 소원을 빌고 탁주를 마셨다.

올겨울 사람들은 빌 게 많은 모양인지 지난해 12월 마당놀이 공연에서는 하루 10여 명이 고사에 참여했는데 올해는 늘 20~30명이 무대로 내려온다. 너무 많아 돌려보낼 때도 있다. 극단 미추 관계자는 "장충체육관에 비해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좁아진 탓도 있지만 IMF 때도 고사에 참여하는 관객이 많았다"면서 "경제 불황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사 뒤 "오늘 오신 손님들 반갑소~"로 열리는 마당놀이 《심청》은 내용에도 현실이 담겨 있다. 2008년 한국에 대한 풍자다. 김연아가 피겨 그랑프리파이널에서 엉덩방아 찧은 이야기를 집어넣고 미국산 쇠고기, 멜라민, 쌀 직불금, 인터넷 도박, 사이버 모독죄, 강남 귀족계 등 한 해 나라를 출렁이게 한 사건들도 희극적으로 비튼다. 심봉사(윤문식)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리로 꽉 차 있어서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고 말한다. 다른 봉사들도 "눈 뜬 자네들은 속아도 우덜은 안 속아" 한다.

태몽을 꾼 심봉사의 자식 농사(?), 젖 동냥 하는 장면 등 재미로만 따지면 전반부가 후반부보다 낫다. 옛날 장례 풍속도 나온다. 심청(민은경)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은 구성력이 좋다. 갓을 상모마냥 돌리는 봉사들의 군무에도 객석 반응이 컸다. 빠른 장면 전개 속에서 윤문식은 여전한 희극 리듬으로 관객을 웃겼고 뺑덕어멈 김성녀 등 오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의 앙상블이 믿음직스러웠다. 종이눈이 날리고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는 뒤풀이 장면에서는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의 경계가 없었다.

▶내년 1월 4일까지 공연. (02)747-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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