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마지막 날… 클래식 관객들 '마라톤 한 날'

입력 : 2008.12.02 05:59
메시앙의〈아기 예수를 바라보
는 20개의 시선〉을 연주한 피아
니스트 백건우. /크레디아 제공
11월 마지막 날(30일)은 한국 음악계의 '행성'들이 교차한 하루였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Messiaen)의 대표작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을 연주했고, 서울대 전 음대 학장인 피아니스트 신수정은 바리톤 박흥우와 슈베르트 연가곡 연주회를 시작했다. 3년 예정으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있는 부천 필하모닉(지휘 임헌정)은 이날 중간 반환점을 돌았다. 오후 2시30분부터 10시까지 7시간30분에 걸친 '음악 순례'였다.

오후 2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아기 예수〉는 순 연주 시간만 2시간10분에 이르는 종교적 대작이다. 연주는 첫 곡 〈하느님 아버지의 눈길〉부터 마지막 20번째 곡 〈사랑의 교회의 눈길〉까지 종교적 심성으로 가득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에게 나의 모든 사랑을 주었노라"는 작곡가 노트가 적힌 첫 곡부터 백건우는 건반을 친다기보다는 마치 어루만지듯이 나지막하고 천천히 출발했다.
슈베르트 연가곡 연주회를 열고
있는 피아니스트 신수정(왼쪽)
과 바리톤 박흥우.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불꽃과 격동 뒤편의 하나님 얼굴"처럼 격렬함을 넘어 환희까지 드러낸 대목(6번 곡)이 이어졌다. 절제와 침묵으로 신성함을 담아낸 굽이들을 넘은 뒤 마지막 순간(20번 곡)에 묵직하고 장엄하게 모든 것을 터뜨린 백건우의 손끝이 건반을 떠나자 2300여 명의 청중은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 5시 모차르트홀

백건우의 연주회가 거대한 종교적 건축물 같았다면, 200석 남짓한 서울 서초동 모차르트홀에서 열린 슈베르트 연가곡 콘서트는 관객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는 작은 사랑방이었다. 구삼열(서울관광마케팅 대표)·정명화(첼리스트), 남진우(시인)·신경숙(소설가), 손진책(연출가)·김성녀(배우), 김광규(시인)·정혜영(독문학자), 김용원·신갑순(삶과꿈 발행인) 등 유달리 '부부 관객'이 많았다. 이날은 지난 4월 팔을 다친 피아니스트 신수정과 두 달 전에 목 부상을 겪은 바리톤 박흥우에게 모두 '부상 탈출'을 알리는 무대였다. 성악가의 성대에 부담을 덜어주려는 듯 무대 한편에는 연주 내내 가습기를 틀어놓았고, 신수정은 공연 직전까지 밤을 새우며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스무 곡의 조(調)를 2~3도 낮춰서 옮겨 적었다.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회를
열고 있는 부천 필하모닉의 지휘
자 임헌정. 조선일보 DB

오후 8시 예술의전당

다시 예술의전당으로 올라오자 이번엔 지난해부터 만 3년 일정으로 '브루크너 마라톤'을 펼치고 있는 부천 필하모닉의 무대다. 중간 반환점을 찍은 이날 연주 곡은 교향곡 6번이다. 잔잔한 현악 트레몰로로 문을 열어 관악과 함께 웅장한 합주로 치닫는 브루크너 교향악의 전형적인 공식에서 가장 벗어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서정성이 압도적이어야 할 두 번째 악장에서 부천 필 특유의 윤기 넘치는 현악이 울려 퍼지자, 전체 합주가 탄탄하게 자리를 찾았다. 지휘자 임헌정은 금관 주자 1명씩을 추가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고, 3·4악장에서 브루크너 작품의 장중함을 살리는 눈부신 호연(好演)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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