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11.22 04:11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
영국 지휘자 사이먼 래틀(Rattle)이 2002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할 즈음, 바이올린 단원이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우리의 레퍼토리를 이제는 잃게 되나요?" 베토벤·브람스·브루크너 등 독일 고전 음악에 정통한 오케스트라와 20세기 현대 음악에 강점을 지닌 영국 지휘자 사이에 자칫 문화 충돌이나 갈등이 생길지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실제 래틀은 8~9세 즈음부터 쇤베르크와 쇼스타코비치의 20세기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은 정작 왕립 음악원 시절인 17세 때야 처음 들었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음반과 영상으로 3차례 남겼고 〈독일 레퀴엠〉 음반도 호평을 받았지만, 브람스 교향곡 녹음에는 아직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 그가 베를린 필 취임 후 6년 만에 브람스 교향곡 전곡(4곡)을 녹음하고 아시아 투어에 나선다고 발표하자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이 쏠렸다. 래틀이 브람스를 제대로 해석하는가는 베를린 필에 무사히 안착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했다. 그 첫 기착지가 바로 한국이었다.
실제 래틀은 8~9세 즈음부터 쇤베르크와 쇼스타코비치의 20세기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은 정작 왕립 음악원 시절인 17세 때야 처음 들었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음반과 영상으로 3차례 남겼고 〈독일 레퀴엠〉 음반도 호평을 받았지만, 브람스 교향곡 녹음에는 아직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 그가 베를린 필 취임 후 6년 만에 브람스 교향곡 전곡(4곡)을 녹음하고 아시아 투어에 나선다고 발표하자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이 쏠렸다. 래틀이 브람스를 제대로 해석하는가는 베를린 필에 무사히 안착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했다. 그 첫 기착지가 바로 한국이었다.
지난 20일 예술의전당. 50여 차례의 고통스러운 팀파니의 연타(連打)와 함께 시작하는 교향곡 1번 1악장부터 래틀은 결코 조급하거나 서두르지 않았다. 래틀 특유의 휘몰아치는 다이내믹함을 내심 고대했던 팬들에게는 뜻밖으로 보일 정도로 정공법에 충실했다. 군더더기나 불필요한 동작 없이 다소 폭넓은 지휘로 단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자, 두텁고 풍성한 현악과 윤기 넘치는 목관 라인이 그대로 살아났다.
오보에 독주를 클라리넷이 이어받고, 다시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호흡을 맞추는 2악장에서는 베를린 필 역대 최강으로 평가받는 목관의 은은함과 우아함이 돋보였다. 플루트 수석 에마뉘엘 파위(Pahud)와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Mayer)는 두런두런 대화라도 나누듯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공연 내내 앙상블을 맞췄다. 전반적으로 '래틀의 브람스'라기보다는 '베를린 필의 브람스'에 가까웠다.
지휘자의 본색은 2부에서 연주한 교향곡 2번 말미에 드러났다. 래틀은 3악장을 현악과 목관이 어우러지는 실내악처럼 해석한 뒤, 마지막 4악장에서 강약을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개별 악기군(群)의 소리들이 화려하게 만발하면서, 짙고 무겁기보다는 날렵하고 산뜻한 브람스를 들려줬다. 때때로 원곡이 지닌 깊이와 폭보다 훨씬 더 깊고 넓게 해석했던 지휘자 푸르트벵글러 시절이나, 짙은 톤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음영 차이를 강조했던 카라얀 시대에서 확실히 벗어났다는 걸 베를린 필은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