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베토벤을 남기고 떠날게"

입력 : 2008.10.31 03:32

延大 이경숙 학장 퇴임 연주회

삶의 후기(後期)에 음악의 후기를 노래한다. 내년 초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피아니스트 이경숙 학장(연세대 음대·사진)이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인 30~32번을 한 무대에서 연주한다. 12월 5일 호암아트홀이다.

"악보 두 줄 외우는 데 딱 1시간 걸리네요…."

베토벤 소나타 31번을 한창 연습 중이던 그녀는 웃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소나타 30번이 천진난만한 가운데에도 야릇한 깊이를 갖추고 있다면, 31번은 아리아부터 푸가까지 모든 형식을 시도하면서 작곡가 스스로 작품을 흔들고 있죠. 마지막 32번은 지금도 종교적이라고 믿어요."

그녀는 "세 작품에는 ▲밝았던 어린 시절 ▲혼동과 좌절로 가득했던 젊은 시절 ▲모든 걸 정리하는 과정인 지금처럼 연주자의 삶이 담겨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이경숙은 꼭 20년 전인 1988년 한국 최초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을 8차례에 걸쳐 완주한 것으로 오롯이 기록에 남아있다. 그녀에게는 20년 전을 돌아보는 무대이기도 한 셈이다. 이경숙은 "당시 세 살짜리 딸(피아니스트 김규연)이 1주일간 심하게 아파서 '괜히 시작했나'라고 후회도 하고 '살짝 사고 나서 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멋모르고 시작했던 그 시리즈를 통해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알게 됐고, 그 뒤에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1989년)와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전곡 연주(1991년)까지 나갈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실제 태어난 날은 1945년 12월 25일이지만, '남자 가운데 인물이 많이 나온 날'이라는 아버지 말씀이 있었고, 호적에는 1944년 1월 2일로 적히게 됐다. 그녀는 "일찍 은퇴하게 되어 조금은 손해를 본 셈"이라며 웃었다.

"그동안 시간에 쫓겨서 충분히 공부하지 못하고 '변명이 많은 연주'를 했다면, 이제는 그 변명거리도 사라진 거죠."

이경숙은 연신 걱정이라면서도 "뭔가 끝나면 새로운 장이 열리게 마련"이라고 했다. '한국 피아노의 대모(代母)'는 아직 더 많은 연주 무대를 꿈꾸고 있다는 뜻이다.

▶이경숙 '베토벤 소나타의 밤', 12월 5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 (02)751-9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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