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죠반니'

《죠반니》(연출 김광보)는 인간의 무기력한 실존을 드러내는 부조리극(不條理劇)이다. 인물의 행동이나 이야기 전개는 논리나 인과관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희곡을 쓴 베스야쿠 미노루(別役實)는 원래 말이 가진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도를 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우리에겐 만화영화 《은하철도999》로 더 잘 알려진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바탕으로 이 부조리극을 썼다.
그렇다고 이 연극이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죠반니와 자네리, 캄파넬라의 어린 시절을 리와인드하는 교실 장면은 재미있다. 선생님은 칠판에 그림을 그려놓고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달에서 동그라미(○), 숲에서 세모(△), 깜깜한 밤에서 제로(0)를 발견했지만 이젠 누구도 그 뿌리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지금 동그라미는 그저 동그라미일 뿐인 것이다.
세 친구에겐 23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은 이렇다. 자네리가 강에 빠졌는데 캄파넬라가 그를 구하려다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네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죠반니가 자네리를 강으로 떠밀었다고 믿고 있다.
부조리극답다고 해야 하나? 이미 죽은 사람들까지 무대에 불러놓고도 《죠반니》는 그 사건의 실체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죠반니가 자네리를) 미워하면서도 가만히 있어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말한다. 죠반니가 무기력하게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몇 배의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소꿉놀이, 인형 몸통에 팔다리를 엉뚱하게 붙이는 장면, 무대 가운데 있는 선로(線路)변환기 등을 통해서도 같은 부조리를 변주해 보여준다.
《죠반니》는 작은 무대에서 배우 11명이 좋은 앙상블을 보여줬지만 관객은 실컷 웃지도, 크게 아파하지도 않았다. 이 작품의 메시지가 어떤 사회적 맥락 바깥에서도 요동칠 만큼 보편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관객에게는 말을 걸 '핑계'가 필요하다. 오늘날 진지한 연극일수록 공연장에서는 관객이 '행방불명'이다. 이 두 가지 점에서 《죠반니》는 연극 자체에 대한 비유 같다. 그런데 공연을 본 14일, 80석 객석은 꽉 찼다. 극장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 이름은 '산울림소극장'이었다. 죠반니는 11월 2일까지 여기에 내려 관객에게 말을 건다. (02)334-5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