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억 들인 행사에 표지판은 A4용지

입력 : 2008.10.17 03:16

졸속 논란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
"최고 VIP 온다" 홍보했던 건축가 자하 하디드도 불참

서울디자인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잠실종
합운동장의 화장실 벽면에 붙어있는 전
시관 방향 표시. A4용지에 손으로 대강
써서 급하게 붙인 흔적이 역력하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지난 10일 서울시가 주최하는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이 막을 올렸다. 디자인올림픽은 디자인을 주요 정책으로 펼쳐온 서울시가 예산 74억원을 투입해 지난 6개월간 야심차게 준비한 대규모 디자인 행사다. 그러나 행사의 뚜껑이 열리자마자 준비 부족과 허술한 운영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개막 나흘째인 지난 13일 행사가 열리는 잠실종합운동장을 찾은 디자이너 김모(39)씨는 참신한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됐다는 '디자인 탐구' 부스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입구에 걸린 개괄적인 안내도 외에 세부 안내표지판은 찾기 힘들었다. 한참을 헤맨 그가 발견한 것은 A4용지에 손으로 대충 '대학교전시 3층'이라고 쓴 표지판이었다. 김씨는 "명색이 '국제 디자인 행사'인데 인상적인 표시판은커녕 기본 표시판도 제대로 없다니 부끄럽다"고 말했다. 안내판 해프닝은 개막식에서도 일어났다. 개막식에 참석했던 이모(42)씨는 "'현재 위치'가 똑같이 표시된 안내도 여러 개가 다른 입구에 설치돼 있어서 주최측에 항의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고 했다.

이번 행사 최고의 해외 VIP였던 이라크계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돌연 불참도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서울시는 당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참석을 주요 홍보이슈로 삼았다. 현대 건축계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콘퍼런스 참가비 8만원(1일 기준·사전등록 30% 할인)을 냈던 이들은 낭패를 봤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하 하디드가 워낙 바쁘고 이랬다 저랬다 해서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디자인계에서는 "예견된 수순이다"는 반응이다. 스타 작가들은 1년 스케줄이 이미 꽉 차 있기 때문에 주요 전시회에서는 적어도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작가들을 섭외한다. "6개월의 준비기간으로 거물급 스타를 모셔오기는 무리수가 따랐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디자인 관계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동원식 전시'의 문제를 꼬집었다. 디자인 교육가인 A씨는 4개월 전 디자인올림픽 담당자에게 작품을 전시하라는 반명령조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 전공은 교육이다. 작품이 없다'고 했지만 담당자는 '행사 이미지라도 있을 것 아니냐. 그거라도 전시하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2개월 전 펼쳐진 참여디자이너와의 간담회에 갔던 디자이너 B씨는 "작품 분실이나 훼손에 대한 규정이 있는가 묻자 주최측에서는 예상치도 못한 일이라는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전시를 위해 소장품 수십 점을 무료 대여해준 한 컬렉터는 "소장품 수십 점을 보내달라고 해서 줬더니 마치 해외 작가가 직접 전시한 것처럼 포장했더라. 비도덕적인 처사를 보고 작품을 도로 가져오려 했다"고 털어놨다.

서울시는 디자이너 콘퍼런스, 디자인 전시회, 대학생 공모전, 디자인 마켓 등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디자인 관련 행사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원스톱 전시회를 표방했다. 그러나 런던디자인위크, 밀라노가구박람회 등 주요 디자인 전시의 경우 이 같은 '백화점식 이벤트'는 철저히 지양한다. 전시 참여자의 특성에 따라 전시 장소와 진행방식을 달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 디자인계 인사는 "디자인 정책을 앞세웠던 서울시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힌 것 같다"며 "74억원의 예산으로 차라리 상설디자인전시관 하나를 짓는 것이 디자인 발전을 위하는 길"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잡음에 대해 서울시측은 "이런 유의 행사나 홍보에 대한 경험이 없어 미흡한 면이 있다. 내년에는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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