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출신의 명 지휘자 주빈 메타(Mehta)를 음악 감독으로 지명한 것이 1961년의 일입니다. 당시 메타의 나이는 불과 25세였지요. 당초 부(副)지휘자로 영입하려 했지만, 음악 감독으로 지명됐던 게오르그 솔티(Solti)가 자신과 상의 없이 메타를 임명했다고 반발하고 사퇴하자 아예 음악 감독으로 한 등급 높이는 강수를 택했습니다. 메타는 이듬해부터 1978년까지 17년간 악단과 호흡을 맞춘 뒤, 뉴욕 필하모닉에 진출하면서 정상급 지휘자로 성장합니다.
또 한번 LA 필하모닉의 선구안이 빛난 때가 바로 1992년입니다. 명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Previn)이 악단을 떠나자, 당시 34세의 핀란드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Salonen)을 음악 감독으로 받아들이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현대 음악 작곡가이면서 지휘자인 살로넨은 LA 필하모닉의 레퍼토리를 과감하고 진취적인 현대 음악들로 바꿨고, 관객과 단원 모두 정장 대신 청바지와 간편한 차림으로 고전 음악을 즐기는 '캐주얼 금요일(Casual Fridays)' 같은 시리즈를 도입하며 악단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2003년에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이 문을 열면서, LA 필하모닉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함께 미 서부를 대표하는 명문 악단으로 급부상했습니다. "미국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동부가 지고 서부가 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들 악단은 상대적으로 침체에 빠져있던 동부의 명문 악단을 넘볼 만큼 상종가를 거듭했습니다.
현재 LA 필하모닉은 또 다른 '권력 교체기'를 맞고 있습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살로넨이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기는 대신에, 내년부터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Dudamel)이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는 것이지요. 그의 나이도 올해 불과 27세입니다. 단순히 미래를 건 도박이라고 하기엔 권력 이양 뒤편에 깔린 셈법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로스앤젤레스 인구 가운데 42.2%가 영어를, 41.7%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실제 영어 표지판 바로 밑에 스페인어가 병기되어 있고, 스페인어만 제대로 하면 사는 데 아무런 지장 없는 도시가 바로 로스앤젤레스입니다. LA 필하모닉이 북유럽 지휘자를 떠나보내면서 남미의 젊은 마에스트로(Maestro)를 맞아들인 것은 단지 세대와 나이만이 아니라 인종 문제까지 감안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레퍼토리부터 남미 특유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굳이 태평양을 건너지 않고서도 이 악단의 권력 이양 과정은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달 LA 필하모닉이 살로넨과 내한한 뒤, 12월에는 두다멜이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교향악단을 이끌고 옵니다. 현직과 후임의 온도 차는 한국 무대에서도 감지될까요. LA 필의 '음악 승부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할까요. 이들의 내한 공연이 흥미로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LA 필하모닉 내한 공연, 18일 세종문화회관, 19일 예술의전당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교향악단 내한 공연, 12월 14일 예술의전당, 15일 성남아트센터, 1577-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