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치마폭에 숨긴 꿈, 화폭에 담다

입력 : 2008.09.30 03:07

여성작가 기획 '언니가 돌아왔다 展'

《언니가 돌아왔다 전》참가 작가 27명 중‘청일점’인 조덕현씨는〈이 알레고리〉라는 제목으로 동시대 여성 작가 윤석남(왼쪽)과 일제강점기의 여성 화가 나혜석의 초상을 그렸다. /경기도미술관 제공
더 이상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하는 '딸'과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내는 '여성'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전자가 가부장제 아래서 숨죽이던 어머니 세대를 향해 애증 섞인 태도로 반(反)작용하는 데 그친다면, 후자는 그런 억압적 가족 및 사회 제도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자신의 인생 틀을 짜는 실천적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경기도미술관(관장 김홍희)은 연례기획전 《언니가 돌아왔다 전(展)》을 통해 이와 같은 딸·여자·여성의 현실과 비전을 동시에 담아내려 한다. 우리 문화지형에서 여성이 '헌신적 어머니', '착한 딸', '순종적 아내'가 아니라 '나'로 자라기까지는 긴 시간이 흘러야 했다. 또 그동안 페미니즘(feminism·여성주의) 운동을 주도해온 여성 선배들의 예민한 감각과 비판적 지성이 있어야 했다.

《언니가 돌아왔다》에서 '언니'는 바로 그 선배이며, 전시는 그들의 시간과 활동을 '한국 근·현대미술'과 '경기도'라는 두 축으로 재구성해, 현재 여기의 여성 미술을 지도 그리는 시도이다. 이를테면 조선 최초 여류화가 나혜석의 자료를 전시한 방은, 남성 중심 근대미술사의 접힌 한 페이지를 펼친다.

또 윤석남·김인순·김진숙 등 1980년대 중반 제1세대 한국 페미니즘 미술 운동을 개시한 이들의 설치작품과 회화를 경기도미술관이라는 제도 공간으로 불러 모았다. 그렇게 '반쪽(어머니·딸·아내)이 아닌 하나(나)'의 정체성을 가진 여성작가들의 예술적 성취를 조명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기획전의 공간과 시간, 주체가 특정 지역과 과거, 여성을 맴돌 것이라 예단해선 곤란하다. 예컨대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태이는 20세기 초 경성의 나혜석과 18세기 런던에 실존했던 여권운동가가 만나는 가상 상황을 다양한 매체로 작품화하여 과거의 도전적 인물들이 장차 도래할 후대에게 내밀히 건네는 해방의 언어를 직조한다. 또 김주연은 핑크색 유아복에 녹색의 식물을 기른 사진을 통해, 상징적 의미에서 성차 없는 생명을 가시화한다.

특히 전시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유일한 남성 참여 작가 조덕현의 존재와 작품의 기능이다. 이 '청일점' 작가는 본 전시에 참여한 한 페미니즘 미술가와 그녀의 젊었을 적 어머니를 한 쌍, 또 그 현대작가와 근대 신여성 화가를 다른 한 쌍으로 소묘한 그림을 서로 마주보게 설치함으로써 오늘에 이르는 여성들의 교차하는 시간과 관계를 기념한다. 문화보다는 '공단'으로 더 널리 알려져 온 지역의 한 미술관 전시를 보면서, 문득 남/여, 과거/현재, 중심/주변의 이분법이 접히는 궤적을 경험한다면 이와 같은 작품들 덕분이다. 전시는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031)481-7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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