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도시가 되기 힘든 지형… 독특하다"

입력 : 2008.09.25 22:59   |   수정 : 2008.09.26 02:56

경희궁에 '트랜스포머' 짓는 현대건축 거장 쿨하스
"산 있는 고지대는 부유층 그 밑에 빈민층이 살고
능선 아래는 다시 도시… 서울, 기발하고 흥미로워"

거장 렘 쿨하스에게 서울은 독특한 실험 무대다. 그는 서울이“지형적으로 도시가 생기기 불가능한 곳에 독특한 형태로 발생한 재미있는 도시”라 말했다. /프라다 제공
현대 건축의 거장 렘 쿨하스(Koolhaas·64)는 '건물은 대칭이어야 한다' '건물은 정형이어야 한다' 같은 근대적 건축 질서 혹은 문법을 파괴하며, '건축 사상가'로 군림해온 인물이다. 리움미술관, 서울대학교 미술관 등으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렸고, 최근엔 베이징의 중국 CCTV 사옥으로 세계 건축계에서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Prada)와 함께 내년 3월 말부터 7월까지 서울 경희궁에서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sformer)'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변화하는 건물'인 '트랜스포머' 프로젝트에서는 기존의 공간 분할을 거부한 새로운 3차원적 공간을 만들어낼 예정. 2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프라다 본사에서 새 프로젝트 설명회를 가진 쿨하스를 만났다.

―당신은 '정신 착란 증의 뉴욕' 등 도시에 대한 성찰과 비평을 바탕으로 한 집필 활동을 해왔다. 사무실 이름도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대도시를 위한 건축 사무소)로 지은 당신에게 대도시, 서울은 어떤 곳인가.

"지형적으로 도시가 생기기 불가능한 곳에 독특한 형태의 도시를 발생시킨 재미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는 즐거운 듯 종이에 신나게 서울의 구조를 그려 보였다.) 산이 도시 곳곳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독특한 형태의 도시를 구축했다. 산이 있는 곳의 고지대는 부유층의 저택이 있고, 그 아래로는 도시 빈민층의 지역이 이어진 뒤 산의 능선이 완만해지는 지대에는 다시 도시가 있다. 이런 도시의 발생 방식이 기발하고 흥미롭다. 서울에서 여러 번 작업을 했는데 매번 시민들이 매우 세련되고 예술을 사랑하는 걸 느꼈다."
―서울 경희궁에서 선보일 프라다 트랜스포머는 한 건축물이 삼차원적으로 변화하며 다른 기능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간적 접근을 시도한 것 같다.

"초기에는 이벤트에 따라 공간을 나눠서 분할하려고 했지만 협소한 공간에 모든 기능을 담는 것에 한계가 있었고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소통하는 공간을 위해 수평적으로 접근했던 건축 방식을 삼차원적인 사고로 변환했다. 공간을 최대환 활용하면서 행사들 간의 유기적인 소통을 확보했다."

―이전에 다른 명품 브랜드에서 유명 건축가들이 비슷한 콘셉트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연출한 적이 있었다.

"샤넬의 경우, 자하 하디드(Hadid)와 함께 유사한 프로젝트를 구현했다. 공간적 아름다움은 확보했지만, 기능에 따른 공간을 평면에서 나열해 다소 어색하고 불편한 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린보다 건축적인 관점에서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공간적인 효율성에서 낫다고 생각한다."
렘 쿨하스가 프라다와 손잡고 내년 3월 서울 경희궁에서 선보일‘프라다 프랜스포머’가상도. 기존 건축의 공간 분할을 거부한 새로운 3차원적 공간이 펼쳐진다.
렘 쿨하스가 프라다와 손잡고 내년 3월 서울 경희궁에서 선보일‘프라다 프랜스포머’가상도. 기존 건축의 공간 분할을 거부한 새로운 3차원적 공간이 펼쳐진다.
―4면체 형태의 사각형, 원형, 십자형, 육각형이 상징하는 바는?

"이들은 기하학이나 건축에서 기본적인 도형들이지만 문화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십자형의 경우 문화적 배경에 따라 종교적인 표식이 될 수도 있고 단순한 수학의 덧셈기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기획한 것은 다양한 요소들이 혼합되며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데 있다. 기호에 대한 해석은 공간을 사용하고 체험하는 자들의 몫이다."

―당신은 건축가가 되기 이전에 신문 기자이자 극작가 활동을 해왔다. 건축 설계, 디자인, 비주얼 아이덴티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왔다. 새롭게 도전하고픈 분야는?

"정치다. 이미 건축 활동에 있어서 늘 유럽과 다른 세계와의 관계, 상이한 문화 사이의 교류와 소통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발로로 정치에 도전해보고 싶다. 건축을 통해 해결하지 못한 영역을 정치적인 접근법을 더해 보다 다양한 문화들이 소통하고 융합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궁극적으로 둘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 공간을 체험하는 서울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좁은 공간의 작은 건축으로 이렇게 다양한 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했으면 좋겠다. 또한 매번 이 공간이 변화할 때마다 이들이 놀라워하며 변화를 즐겼으면 좋겠다."
여미영
―당신을 롤 모델 삼는 한국의 젊은 건축학도를 위한 조언은 무엇인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건 두렵고 부담스럽다. 건축에 있어서 나는 빙산의 일각과 같은 존재일 뿐 나보다는 내가 찾아내지 못한 새로운 건축적 가능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담스러운 시선에서 벗어나 무책임한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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