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9.25 12:54
[OSEN= 박희진 기자] 홀로 된 엄마에게 금쪽같은 휴가를 반납하는 딸이 있다. 딸은 엄마가 지금보다 기력이 달리기 전에 여행도 시켜드려야 할 것 같고, 고단한 몸을 편히 쉴 수 있게 비싼 안락의자에 풋 스파까지 사다 드리며 못해 본 것 없이 다 해주고 싶은 모양이다. 문짝 고장 난 오래된 싱크대도 냉큼 새 걸로 바꿔드리고 이것저것 살림살이들을 챙긴다. 딸은 하루하루 늙어가는 엄마에게 시간이 없는 것 같이 조급하기만 하다.
연극 ‘금녀와 정희’에서 30대 젊은 딸 정희(권지숙 분)가 늙어가는 어미를 생각하는 맘이 우리네 딸들을 보는 듯하다. 막이 오르고 한참을 보고 있자니 정희의 행동 하나하나에 공감하는 많은 관객들이 자신도 모르게 무대 위의 정희가 되어 가고 있다. 무대와 공감대를 형성한 딸들은 일상에 대한 모든 것, 특히 좋은 것이면 엄마와 더 함께 하고픈 마음, 그러면서도 거절하며 내숭떠는 엄마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어 “똑같아”를 외쳤다.
정희는 칠순을 바라보는 늙은 어미가 5년째 홀로 시골에서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안쓰럽다. 효심가득해 보이는 정희의 마음 씀씀이가 금녀는 그닥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여행을 가자고 졸라대는 딸의 정성도 거절하고, 사다준 안락의자에는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만 잔뜩 얹어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금녀. 그런 엄마에게 딸은 계속해서 잔소리를 한다. 흘러나오는 오줌을 참지 못하고 급하게 엉덩이를 보이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소변을 보고 앞가슴이 훤히 보이는 모습으로 오빠를 맞이하는 등, 늙은 금녀의 모든 것이 정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계속되는 그들의 다툼 속에서 정희는 일방적으로 금녀에게 변화를 요구하지만, 금녀는 그런 정희가 거북하고 갑갑하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소리치는 정희에게 “지금 여기서 편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금녀다. 금녀는 그냥 자유롭고 싶은 거다.
‘한 쪽 가슴은 남편에게 주고, 나머지 한 쪽 가슴은 아이에게 내준’ 채 그렇게 평생 자식과 남편에게 자신을 나눠주며 살아왔다. 자신의 욕망은 감춰두고 꾹꾹 눌러 가족의 평온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런 금녀는 자신이 ‘지고 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이제는 그냥 ‘있고 싶은’ 것이다.
정희는 끊임없이 딸이란 이름으로 금녀의 삶을 비집고 들어와 ‘엄마’이기를 요구한다. 자신은 ‘여성’이기를 주장하면서 금녀에게만은 유독 ‘엄마’이기를 강요하는 것, 힘들고 외로울 때 우리가 ‘엄마’를 찾는 것처럼 정희는 기댈 수 있는 ‘엄마’가 영원히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정희의 행동은 금녀에겐 효심에 찬 배려가 아닌 간섭으로 여겨져 거추장스럽고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엄마’이기에 매번 주춤거린다.
갈등은 결국 금녀와 정희의 극단적 충돌로 이어져 엄마와 딸이기에 앞서 ‘여자’라는 사실을 정희가 이해하는 순간 비로소 화해한다.
‘사랑, 지고지순하다’, ‘연애 얘기 아님’의 최진아 작가 시선이 이번엔 엄마와 딸,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깊은 사랑을 이야기 했다. 이 작품의 소재가 너무 일상적이어서일까, 여성관객의 초반에 보였던 높은 호응도는 정희가 금녀를 ‘여자’로서 화해하는 시점부터 추상적이고 극단적으로 흐르면서 다소의 난해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객석을 채운 것은 대다수가 여성관객이었다. 특히 엄마 손을 잡고 찾은 모녀 관객이 종종 눈이 띄었다. 젊은이들이 가득한 대학로 소극장에 엄마와 동행하기는 쉽지 않을 법도 한데, 그만큼 모녀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jin@osen.co.kr
선돌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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