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ABC] 살빼는 소프라노… 목소리는 안줄어들까

입력 : 2008.09.18 06:09
오페라 가수도 열심히 다이어트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미국의 소프라노 데보라 보이트(Voigt)가 2년 여 만에 45㎏ 가까이 감량을 하고 무대로 복귀했습니다. 정확한 몸무게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성악가 스스로 "옷 사이즈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서, 위 절제 수술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보입니다.

20세기 최고의 디바(diva) 마리아 칼라스(Callas)도 영화 배우 오드리 헵번을 벤치마킹(bench-marking)하기 위해 30㎏ 가까이 감량한 적이 있으니, 성악가의 다이어트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체중 감량에는 다소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보이트는 지난 2004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서 아리아드네 역으로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출연 예정이었습니다.
소프라노 데보라 보이트가 체중 감량을 하기 전의 모습(왼쪽)과 45㎏ 가량 감량을 한 뒤 지난 1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노래하는 모습. 데보라 보이트 홈페이지(www.deborahvoigt.com)
소프라노 데보라 보이트가 체중 감량을 하기 전의 모습(왼쪽)과 45㎏ 가량 감량을 한 뒤 지난 1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노래하는 모습. 데보라 보이트 홈페이지(www.deborahvoigt.com)

1991년 보스턴에서 이 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하며 성악가로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았기에 보이트 자신에게도 무척 소중한 배역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연출가 크리스토프 로이(Loy)는 '검정 칵테일 드레스가 보이트에게 맞지 않는다'며 배역 교체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보이트는 인터뷰에서 "내가 평생 뚱뚱했다는 걸 생각하면 무척 아이러니컬한 일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결국 보이트는 "오페라 극장 문제가 아니라 내 무릎이 아팠기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숨이 찼고,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내 몸이 의자에 맞을지 걱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첫 달에만 10㎏ 가까이 줄인 그는 체중 감량에 성공한 뒤 활발하게 활동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다이어트 사건은 고고하고 도도하게 보이던 클래식 음악계에도 한치 빈틈 없이 시장 논리가 적용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90년대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Gheorghiu)에 이어 2000년대의 안나 네트렙코(Netrebko)까지 노래는 물론, 젊고 예쁘고 연기력까지 뛰어나야 인정 받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네트렙코는 아예 마릴린 먼로를 연상시키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수영장에서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 가운데 아리아 〈달의 노래〉를 뮤직 비디오로 촬영해 화제를 뿌렸지요. 콧대 높기만 하던 오페라도 날이 갈수록 '오디오'에서 '비디오'로 그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체중 감량 이전에도 보이트는 풍부하면서도 선 굵은 목소리로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독일 오페라에서 정평이 나있던 정상급 드라마틱 소프라노입니다. 최근 같은 배역으로 같은 극장에 복귀하게 됐으니, 결과적으로는 '무승부'인 셈입니다. 하지만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사는' 것이 오페라의 매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씁쓸하기 그지 없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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