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56점 팔아 1274억원 벌어
작품 '금송아지' 184억원… 화랑 거치지 않고 직접 경매

◆흥분
전세계 화상(畵商)과 컬렉터, 취재진 등 수백 명이 몰린 15일 경매의 하이라이트는 방부액이 담긴 거대한 유리상자에 각각 죽은 상어와 소(牛)를 집어넣은 설치작품 〈왕국(The Kingdom)〉과 〈금송아지(The Golden Calf)〉였다. 치열한 경합 끝에 이 두 작품이 각각 850만파운드(170억원)와 920만파운드(184억원)에 팔리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관행 파괴
세계 평단과 시장과 언론이 이 행사에 주목한 것은 이번 경매가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미술작품은 작가→화랑→컬렉터→경매회사→(다른)컬렉터의 순(順)으로 유통되는 것이 관례였다. 이 과정에서 화랑과 작가는 일정비율로 판매수익을 나눠왔다. 허스트는 수백 년 된 이 '분업'의 룰을 깨고 작가 스스로 자기 작품을 대량으로 경매에 내놓았다. 소더비 측은 허스트의 경매를 유치하기 위해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작가? 기업가?
허스트는 '개인'이라기보다 '기업'이다. 조수만 180명이다. 그의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또 개인전을 열기 위해 전세계 미술계가 줄을 서고 있는 '문화권력'이기도 하다. 그의 재산은 10억달러(1조1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투자회사와 손잡고 자기 작품을 자기가 사들인 적도 있다. 그 뒤 그 작품의 값이 치솟아 수백만달러의 시세 차익(差益)을 봤다. 그가 이번 경매에 내놓은 작품 223점은 엄밀히 말해 신작은 아니다. 모두 과거에 발표한 자기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허스트의 대변인 겸 매니저인 프랭크 던피(Dunphy·70)는 "한마디로 '허스트 최고 히트곡 선집'(Greatest Hits)이라고 봐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세계적인 미술 평론가 로버트 휴즈(Hughes)는 "마케팅만 출중하고, 작품은 조잡하다"고 비판했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이번 경매 전체가 "황당한(ridiculous) 일"이라고 썼다.
◆경탄과 경악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 등은 이번 경매가 "허스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대담한 행동"이라고 썼다. 그러나 그 대담성 때문에 장차 전세계 화랑가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작가가 직접 자기 작품을 경매에 내놓기 시작하면, 분업이 붕괴된다는 것이다. 허스트는 대변인을 통한 응답에서 본지에 "화랑은 문턱이 높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살 수 있는 경매야말로 민주적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