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여행자 '한여름 밤의 꿈'

입력 : 2008.09.11 09:23

인도에서 나침반을 발견하다

인도의 힌두 메트로플러스 시어터 페스티벌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된 연극 '한 여름밤의 꿈'
인도의 힌두 메트로플러스 시어터 페스티벌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된 연극 '한 여름밤의 꿈'

인도의 힌두 메트로플러스 시어터 페스티벌에서 개막작으로 올려진 극단 여행자의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은 현지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여행자의 해외 순례는 분명 우리 창작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좋은 힌트가 되고 있다.

'모든 것은 이름대로 흘러간다'는 말이 있다. 극단 여행자(대표 양정웅)의 행보가 그렇다. 이들은 지난 7년간 34만 2,738㎞를 여행하며 15개국 58개 도시에서 대표작 '한여름 밤의 꿈'을 무대에 올리며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낯선 땅에서 매번 다른 아이디어를 흡수하고 바꿔가며 발전했다. 지금의 '한여름 밤의 꿈'이 가지는 치밀한 구성과 높은 완성도는 긴 여행의 경험에 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극단 여행자는 지난 8월 1일, 인도 첸나이에서 열린 ‘힌두 메트로플러스 시어터 페스티벌’(이하 힌두 페스티벌)의 개막 무대에서 자신의 위치와 나아갈 방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해외 진출을 꿈꾸는 또 다른 한국의 공연 단체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인도, 문화에 손 내밀다

올해 4회째를 맞은 힌두 페스티벌은 인도 내 30개 도시에서 발행되는 인도 최고의 유력 일간지 ‘더 힌두(The Hindu)’가 주최하는 인도 유일의 영미권 희곡 및 영어연극 축제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춤과 음악, 곡예, 무술 등이 발달했으며 이를 일상적인 명상법으로 활용할 만큼 예술이 삶의 일부로 녹아있다. 게다가 길거리나 카페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 많아 극장 공연은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다.

만성적인 경제난과 인프라 부족도 극장 공연의 발달에 제약이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인도 도시 근로자의 하루 평균 임금이 150~200루피(3~5달러) 수준인데 반해, '한여름 밤의 꿈'의 관람료가 최고 500루피, 최저 150루피였으니 극장행이 쉽지 않은 것이다.

첸나이가 인도의 문화도시로 손꼽히는데도 불구하고, 페스티벌이 열린 무타 벤카타수바 라오 극장이 대중을 상대로 한 전문 공연장이 아니라 학교 재단 소유의 다목적홀인 점 역시 열악한 여건을 대변했다.

하지만 인도 공연계의 잠재력은 작지 않았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경제 활성화를 타고 창작이 활기를 띠고 있으며, 다민족·다문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영화 산업의 볼리우드(bollywood)에 버금가는 공연계의 붐업(boom up)도 기대해 볼 만 하지 않을까.

힌두 페스티벌의 총감독을 맡은 무쿤드 파드마나반은 “앞으로 2년 정도 영미 연극 중심으로 관객을 개발한 뒤 궁극적으로는 인도의 다양한 지방언어를 이용한 창작을 지원하는 것이 페스티벌의 목표”라고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올해 첸나이와 독일 창작자들이 합동 작업한 '일렉트로닉 시티(Electronic City)'가 공연되었다.

인도는 지리적으로 서남아시아에 속하지만 영국 식민지 역사로 인해 서구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동서양이 혼재된 글로벌한 정서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인도에서의 공연이 성공했다는 것은, 다양한 세계무대를 공략하는 한국 창작자들에게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도, 여행자에게 열광하다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은 힌두 페스티벌의 홍보 단계에서부터 가장 주목받는 초청작으로 현지 언론에 소개됐으며, 개막 전날 열린 런칭 파티에서도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인도의 주요 언론과 정·재계,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런칭 파티에서 연출가 양정웅은 방문 소감과 창작 배경을 밝혔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언론사 기자와 평론가, 일반 관람객들이 자리한 가운데 연출가와 함께하는 대화 시간도 가졌다. 또한 공연 당일 1000석 규모의 대극장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인도에서 극히 드문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작품은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았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호평한 내용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외국인 관객이 낯설어 하는 것을 억지로 보여주려 애쓰지 않고, 잘 알고 있는 것 내지는 친숙하게 받아들일 만한 내용을 다뤘다는 점이다. 공연 직후 상당수의 관객들은 “누구나 아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원작으로 한 덕에 이질감 없이 즐길 수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원작에서 모든 소동을 야기하는 요정왕 오베론을 ‘한국의 전통적인 고블린’으로 소개된 ‘도깨비’로 캐릭터를 바꾼 각색이 신선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대사 중심의 연극이 가지는 전형성을 탈피하고 몸짓, 음악, 조명 등 비언어적인 표현을 조화롭게 엮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 받았다.

연극 평론가 겸 연출가 고우리 람나라얀은 8월 4일자 ‘더 힌두’에서 “배우들이 직접 연주한 타악기의 강렬한 리듬은 움직임에서 나오는 힘을 하나로 묶어 주는 한편,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까지 이끌어낸다”며 “코미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밍’ 역시 타악에 의해 조절된다”고 밝혔다.

한편, 글로벌한 소재를 한국화하되 굳이 우리 전통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정서를 두루 반영한 것도 장점으로 꼽혔다. 예를 들어 타악에 사용된 20여 가지 악기 중에는 사물(북·장구·징·꽹과리) 외에 중남미 전통악기 ‘레인 스틱’ 등 다양한 국적의 악기가 포함됐고, 등퇴장시의 동작에서는 중국의 경극이 연상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국적의 모호함이 아니냐는 국내의 지적과 달리 해외에서는 아시아적인 새로움을 낯설지 않게 표현했다며 대체로 후한 점수를 줬다.

바로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한여름 밤의 꿈'이 인도에서 이끌어낸 평가는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창작자들에게 방법론적인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것을 바다 건너에 알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예술적인 완성도이겠지만, 한국 전통의 원형을 어떤 식으로 구현하는 게 좋은지는 아직도 첨예한 논쟁거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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