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의 불문율을 깨뜨린다? 극단 미추 '리어왕'

입력 : 2008.09.05 09:31
극단 미추의 연극 '리어왕'(사진=극단 미추)
극단 미추의 연극 '리어왕'(사진=극단 미추)

극단 미추에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준비했다. 그간 꾸준히 한국적인 무대 양식과 연기 스타일의 전범을 보여줬던 극단이기 때문에 이번에 미추가 준비한 서양의 고전은 유독 눈길을 끈다. 서양 고전 속에 동양의 정서가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 기대해도 좋다.

미추 극단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극장은 어김없이 관객으로 붐빈다. 대개 1, 2년에 한두 번 정도 신작을 올린다는 희소성의 가치도 있지만, 매번 평균치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극단으로서 관객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국내 몇 개 되지 않는 집단 운영 체제의 극단 가운데에서도 미추 극단은 유난히 배우들의 앙상블이 훌륭하다는 점도 보는 이들을 흐믓하게 만드는 요소다. 수많은 '리어왕'의 무대 가운데 미추의 '리어왕'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연출가의 마이더스 손을 주목하라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자주 국내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서양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라도 쉽게 공감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향한 막내딸의 진정한 사랑이 그러하고, 그릇된 판단으로 시야가 흐려진 권력자의 비참한 종말이 그러하다.

무너진 권력 앞에서도 살신성인하며 떠나지 않는 충신의 모습도 그렇지만, 모든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때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된다는 메시지야말로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다.

왕의 세 딸 중에서 막내딸만이 유일하게 권력에의 욕망 없이 순수한 애정을 보여주는 부분은 한국의 바리데기 설화와도 맥락이 닿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비극 가운데에서도 특히 한국적인 정서로 이해가 쉬운 작품이다.

권력의 생태가 세상의 가장 낮고 겸허한 기운 속에서 빚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정한 욕망으로 가득 채워져 허물어지는 경우가 많다. 방향을 잃은 권력의 주변은 추하고 검은 기운으로 둘러싸여 가시거리를 제로로 만들기 일쑤다. 망언이 난무하고 어이없는 결과가 도출되는 과정도 흔하다.

이번 미추 극단의 '리어왕'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대부분의 배우들을 광대로 설정해 놓은 이병훈 연출가의 해석이다. 권력의 난장, 그 주변을 배회하는 세상의 바보들을 우의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연출가의 재치다.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연출가 이병훈은 이번 작품을 위한 워밍업을 꽤 진지하게 진행시켰다. 배우들은 이미 6개월 전부터 작품을 위한 엄격한 신체 훈련이 시작되었고, 캐릭터의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한 어마어마한 분량의 리딩 연습까지 거쳤다.

또한 마당놀이에 능한 미추 배우들의 특성을 활용해서 전통 연희 양식의 몹씬을 고안한 덕분에 관객들은 '리어왕'에서 의외의 스펙터클을 만날 수 있다. 훌륭한 앙상블을 가장 큰 무기로 삼고 있는 미추 단원들과 이병훈의 이번 만남은 여러 면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이병훈은 배우를 가장 배우답게 만드는 데 정평이 나 있는 연출가란 점에서 이번 무대는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앙상블이 훌륭하다는 것은 그만큼 각각의 개성보다 전체를 만드는 에너지에 집중되어 왔다는 뜻인데, 이러한 작업으로 오랫동안 겸손하게 길러진 미추 배우들을 이병훈의 마이더스 손은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집약된 무리로만 보이던 미추의 무대에서 이번에는 앙상블의 절정이 진정 배우 개인으로부터 발현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동우가 만들어내는 무대가 서양의 왕국이 아니라 한국의 궁정을 모티브로 하는 것만 보아도 이번 무대가 동서양의 접점에서 얼마나 치열한 고민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라이브로 진행될 음악도 역동적인 무대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다. 타이틀 롤 리어 역에는 정경화, 큰 딸 거너릴에는 서이숙이 캐스팅되었다. 최용진(콘월), 조정근(켄트) 외 20여 명의 미추 배우들이 출연한다.


일시 9월 4~10일 평일 8시 / 토 3시 7시 30분 / 일 3시
장소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문의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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