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여주려는가, 무엇을 보았는가, 연극 '팔인'

입력 : 2008.09.05 09:19
연극 '팔인'의 주연 배우(사진=성남아트센터)
연극 '팔인'의 주연 배우(사진=성남아트센터)

극작연출가 고선웅은 대중이 선호하는 방식을 통해 현대 사회의 외로운 자아를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그가 무대 위에 펼쳐놓는 ‘기묘한 상황 구경시키기’는 과연 삶의 어떠한 통찰력을 줄 수 있는가. 이에 대해 고선웅은 아직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지하보도를 걸어가는 여인 1, 스쳐 지나가듯 여인 2를 만난다. 여인 1, 여인 2에게서 친근한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독백. “이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가 난다”' - 1990년대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던 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은 도시의 쓸쓸함에 숨 막혀 하던 이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이 장면은 광고로 재구성되어, 익명의 공간에서 낯선 누군가에게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하게 만들었다.

익명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낯선 타인에게서 풍겨오는 ‘자신과의 인연’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도 감지하지 못한 인연과 운명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과 일찌감치 관계 맺어 왔다는 생각은, 때로는 우리 삶을 신비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아찔하게 만들기도 한다.


엇갈리는 인연, 알 수 없는 인생

극단 마방진이 말하는 '팔인'은 익명의 도시를 살아가는 8명의 얽히고설킨 인연을 관조하도록 유도하는 작품이다. 8명은 서로 기묘한 인연으로 얽혀 있다. '문자'는 '조풍'과 원 나잇―스텐드를 하고 자신의 운명을 맡기려 하지만, 조풍은 여자 친구(단비)가 있다고 말하며 문자의 마음을 거절한다.

조풍은 여자 친구 단비의 집에 결혼 승낙을 얻으러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도리어 단비의 이모(‘혜리’)와 불륜에 빠진다. 한편 조풍에게 버림받은 문자는 조풍에 대한 복수심으로, 평소 자신을 따라다니던 규남을 불러내어 성교를 한다. 그런데 ‘규남’은 단비의 오빠였다. 문자? 조풍? 단비? 혜리? 규남의 인연은 이렇게 얽혀 있다.

다른 세 사람의 인연도 얽혀 있다. ‘영미’는 미국대사관에서 인터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데, 어느 날 인터뷰에서 떨어진 ‘명기’가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인터뷰 탈락 이유를 캐묻는다. 참다못한 영미는 예전 뒷골목을 풍미했던 싸움 실력으로 명기를 흠씬 두들겨준다. 몰매를 맞던 명기를 수위인 ‘명행’이 도와주면서,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영미는 단비의 친구였고, 수위 명행은 조풍을 유혹한 혜리의 남편이었다. 세 사람의 인연도 서로 얽혀 들면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고, 그 그룹은 앞선 다섯 사람의 그룹과 역시 얽혀든다.

실제로 연극의 대부분은 이들 두 그룹, 나아가서는 8명의 인연이 얽혀드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할애된다. 명기가 명행의 집에 갔다가 혜리를 만나게 되는데, 사실 명기는 혜리의 불륜 상대인 조풍의 수강생이었다는 식이다. 또 조풍에게 버림받고 거칠어진 문자는 기차 안에서 단비를 만나게 되고, 이름이 단비라는 말에 기분 나쁜 언사를 퍼붓다가 오히려 단비에게 수모를 당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가 8명의 인연이 한 자리에 확인된다. 8명은 동일 공간에서 만나 상대와 공유하고 있는 인연을 확인하고, 한참 다툰 후에, 극적으로 화해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정신병원으로 자진해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진정 행복했다고 한다.


얽히고 설킨 인연을 구경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여덟 명의 운명을 엮는 방식은 재미있다. 하지만 8인의 인연을 구경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라고 묻는다면 이 ‘재미’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 작품은 단순한 흥밋거리로 8명의 삶과 인연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배우들의 의상을 흰색으로 단순화하고 무대 공간을 추상화한 것은,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특수한 사건으로 이해되지 않기를 바랐다는 뜻일 게다. 당연히 예외적인 이야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일반적인 화법이 아닌 그들만의 특수한 화법을 구사하려고 하고, 대사보다는 마음껏 내지르고 대사가 서로 포개져 들리지 않는데도 상관하지 않는 것도 단순한 흥밋거리 이상으로 이 작품을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의도와 배려는 구체적으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그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실사 공간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는 높이 살 수 있겠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기가 현실을 대체할만한 가상공간을 직조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대사는 지나치게 거칠었고, 인물의 성격을 대변하고 상대 배역과 차이를 부각시킬 만큼 개성적이지 못했다.

개인의 내면 심리를 말로만 드러내려 했던 점도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다. 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억양만 강조하게 된 것도 패착이 아닐 수 없다. 낮은 톤이 존재할 때 높은 톤이 존재할 수 있고, 침묵이 있을 때 대사가 있을 수 있으며, 행동이 곁들어질 때 언어의 힘이 살아날 수 있다. 하지만 '팔인'의 배우들은 말, 그것도 강한 어조의 말을 구사하기 급급했다.

'타워팰리스'라는 공간을 차용한 점, 미국비자와 관련된 문제적 발언을 삽입한 점, 불륜을 더 이상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의 풍조를 반영한 점, 상대로 인해 상처받으면서도 집착을 떨치지 못하는 개인의 면모를 보여준 점. 이 모든 사항들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지만, 일관된 작가 의식 아래 통합되지는 못했다. 개별적으로 흩어져 여러 편의 옴니버스 작품을 보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고선웅은 대중이 선호하는 이야기 방식을 통해 현대 사회의 외로운 자아를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다. '성인용 황금박쥐'가 그러했고, 재 창작극 '모래여자' 가 그러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핵심적인 잠언을 담지하지는 못했다.

'성인용 황금박쥐'에서 '이상'의 삶을 통해 현대인의 고립된 자아를 반영하려 한 점이 인정되고, '모래여자' 에서 언어의 부조리함을 통찰하여 소통 불가능의 세상에 대해 말하려고 한 점 역시 인정되나 '팔인'까지 포함하여 세 작품 모두 기묘한 상황을 구경한다는 것이 과연 삶에 어떠한 통찰력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신기한 인생을 구경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더 기묘한 것이 등장하는 순간 이 작품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해 볼 문제일 것이다.


일시 : 9월 1일~9월 6일  평일 8시 / 토 4시, 7시 (윌 쉼)
장소 : 마방진 극공작소
문의 : 02-556-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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