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8.30 03:17
| 수정 : 2008.08.30 04:12
성역화 작업 기념 현장 기행 한·중·일 등 젊은이들 초청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온 일본 대학생 인도 사토미(여·22)씨는 28일 경기도 여주군 능현리의 명성황후(1851~1895) 생가에서 눈시울을 적셨다. 명성황후 생가 성역화 작업을 기념하는 '명성황후의 숨결을 찾아서' 현장 기행 행사에서 배우 이태원이 뮤지컬 《명성황후》 삽입곡 〈어둔 밤을 비춰다오〉를 부를 때였다. "왜 이리 아침은 더디 밝는가/…/누가 나에게 빛을 다오/ 어둔 밤을 비춰다오…."
생가 뒤 참나무숲에서는 늦은 매미가 울었다. 소감을 묻자 인도 사토미씨는 "명성황후를 전혀 몰랐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역사에 대해 공부를 더 파고들어야겠다"며 "세자가 명성황후의 품에 안기는 장면에서는 불길한 예감 때문인지 슬퍼지면서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생가 뒤 참나무숲에서는 늦은 매미가 울었다. 소감을 묻자 인도 사토미씨는 "명성황후를 전혀 몰랐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역사에 대해 공부를 더 파고들어야겠다"며 "세자가 명성황후의 품에 안기는 장면에서는 불길한 예감 때문인지 슬퍼지면서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 한국관광공사, 여주군이 공동 기획한 이날 기행에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의 2030세대 32명이 초청됐다. 이들은 문화재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최근 서울 쌍문동에서 이전한 감고당(感古堂), 명성황후 기념관과 문예관, 명성황후 생가를 둘러봤다. 감고당은 영조가 인현왕후의 친정을 위해 지어준 집으로, 8세 때 여주에서 한양으로 올라간 명성황후가 궁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던 곳이다. 조선의 왕비 40여명 중 8명이 이 고장 여주 출신이다.
명성황후 생가는 소박했다. 기와들 사이에 잡초도 자라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나의 운명은 그대〉 등 뮤지컬 《명성황후》의 노래들이 마당에 차올랐다. 조선의 운명을 바로잡으려다 시해된 명성황후의 비극을 한국적 리듬으로 살려낸 뮤지컬 《명성황후》는 1995년 초연해 지난해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9월 18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다.
기념관에서는 일본의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보내온 사과문도 전시되고 있었다. 《명성황후》 연출가 윤호진은 "뮤지컬 '명성황후'는 TV 대하드라마와 생가 복원 등으로 이어지며 역사를 바로잡고 전하는 역할을 해왔다"며 "생가에서 명성황후를 깊이 음미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일본 참가자 미야모토 요시미(여·27)씨는 "지난해 공연장에서 본 《명성황후》는 그저 '스케일이 큰 뮤지컬'이었는데, 오늘 생가에서 다시 만난 《명성황후》는 작지만 감동적인 공연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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