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편견 녹이는 소년들의 하모니

입력 : 2008.07.31 03:06

세계의 청소년 오케스트라들

유럽연합(EU)처럼 어엿하게 자체 헌장을 갖추고 활동하는 청소년 오케스트라, 어른들이 종교와 이념으로 나뉘어 반목을 일삼을 때 음악으로 평화를 꿈꾸는 청소년 오케스트라, 가난에 찌든 빈국(貧國)을 일약 문화의 강국으로 바꿔낸 청소년 오케스트라…. 흡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詩) 구절처럼, 기성 악단 못지않은 실력과 꿈으로 지구촌의 음악 환경을 일궈내는 청소년 오케스트라들이 있다.

유럽연합을 닮은 오케스트라 EUYO

유럽연합 오케스트라(EUYO)는 EU에 가입한 27개국의 14~24세 단원 140여 명으로 구성된 악단이다. 매년 4000여 명의 후보자들이 지원해서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단원으로 선발된다. 이 때문에 베를린 필하모닉을 비롯해 세계 주요 교향악단에 악장만 16명, 악기 별 수석 연주자 60여 명을 배출한 '오케스트라 인큐베이터' 역할도 한다.

악단을 후원하는 유럽연합(EU)처럼 이 오케스트라에도 헌장이 있다.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경계를 넘어서 앙상블을 통해 훌륭한 음악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음악이 유럽통합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악단 창설에 매달렸던 리오넬 브라이어(Bryer·1928~2006)와 조이 브라이어 여사 부부의 헌신이 깃든 오케스트라이기도 하다.
올 여름 유럽 최고·최대의 음악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메인 손님으로 초청 받은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오른쪽). 30여 년 전 시작한 청소년 오케스트라 운동은 베네수엘라를 남미의 문화 강국으로 탈바꿈시켰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올 여름 유럽 최고·최대의 음악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메인 손님으로 초청 받은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오른쪽). 30여 년 전 시작한 청소년 오케스트라 운동은 베네수엘라를 남미의 문화 강국으로 탈바꿈시켰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악단의 음악 감독은 명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Ashkenazy)다.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기성 악단과 유일한 차이는 젊은 연주자들이어서 경험이 적다는 것뿐이다. 음악이 평화를 만들 수는 없지만, 기여할 수 있다고는 믿는다"고 말했다. 오는 27일 예술의전당에서 창단 30년을 맞은 이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 공연이 열린다.

베네수엘라를 문화 강국으로 만든 청소년 교향악단

유럽 최고의 음악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올해 가장 주목 받는 오케스트라는 기성 전문 악단이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교향악단인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과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 등으로 잘츠부르크를 적신다. 이 악단의 지휘자는 올해 27세의 구스타보 두다멜(Dudamel)로 이미 미국 명문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차기 음악 감독으로 예약된 상태다.

아이들의 음악 뒤편에는 어른들의 간절한 바람이 녹아있다. 베네수엘라의 문화부 장관을 지냈으며 경제학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Abreu) 박사가 마약과 폭력의 위협에 노출돼있는 아이들에게 총 대신 악기를 쥐여주며 청소년 음악 프로젝트인 '엘 시스테마'를 시작한 것이 1975년이다. 처음에는 10명도 되지 않는 아이들이 모였지만, 지금은 150여 개의 어린이와 청소년 교향악단에서 1만여 명이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중동에 평화의 꿈을 심는 청소년 교향악단

타계한 팔레스타인 출신의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Said)와 유대계 명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Barenboim)이 처음 마주친 곳은 1990년대 초 런던의 한 호텔 로비였다. 둘은 1995년 미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열린 대담을 통해 서로의 차이와 공통점, 음악과 정치·종교의 관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둘의 협력은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괴테 탄생 250주년을 맞아 1999년 바이마르에서 아랍과 이스라엘의 18~25세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음악을 연주하고 함께 토론했다. 아랍과 이스라엘의 젊은 음악가들을 모아서 새로운 악단을 만든다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의 출발점이었다.

2005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극심한 분쟁 지역인 라말라에서 이 악단의 콘서트가 열렸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연주가 끝난 뒤 바렌보임은 이렇게 말한다. "음악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건,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이해와 끈기, 용기와 호기심입니다."



▶유럽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오는 27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라흐마니노프 〈세헤라자데〉,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협연 임동혁), (02)318-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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