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 '대관령국제음악제' 참가하는 美 제이 그린버그
8살때 피아노 소나타… 10살때 협주곡 작곡
"악상 넘쳐나… 연필과 오선지만 있으면 충분"
줄리아드 교수 새뮤얼 자이먼(Samuel Zyman)은 '클래식 신동' 제이 그린버그(Jay Greenberg) 앞에서 할말을 잊는다. 미국식 나이로 16년 7개월째인 이 여드름투성이 소년은 벌써 '경악'에 가까운 화려한 이력을 가졌다. 3세에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고 피아노는 스스로 깨쳤다. 일곱 살부터 음악 이론과 작곡 공부를 시작해 10세 때 뉴욕의 줄리아드 예비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지금까지 5개의 심포니를 포함, 100곡 넘게 작곡했다. 15세 때 'Symphony No.5'라는 이름의 관현악곡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로 소니 클래식에서 음반으로 발매했다. 그린버그는 이 회사와 전속 계약한 최연소 음악가로 기록됐다.
미국 CBS의 간판 프로그램 '60분'에서 모차르트, 멘델스존, 생상스에 버금가는 음악 천재로 분류된 그가 이달 30일부터 강원도 용평 등지에서 열리는 제5회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한국 전래 동화를 소재로 한 창작곡을 선보인다. (▶조선일보 7월 9일자 A24면 참조) 2개의 현악 4중주를 위한 곡인 '네 가지 풍경'(The Four Scenes·15분 40초)은 집에 있는 책을 뒤적이다 영감을 얻었다.
"원래 세계 전래 동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목들은 기억을 못하지만 한국 전래 동화는 매우 사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곡을 하면서 스토리에 영향을 받기 보다 눈 내리는 장면, 산 속 풍경 묘사 등 동화의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옮기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린버그는 키 173cm에 마른 체격, 상대방과 거의 시선을 맞추지 않을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 질문을 받으면 5~6초 가량 생각한 뒤 몇 마디 짧게 대답하는 '햄릿형(型)'이다. 그가 작곡할 때 사용하는 도구는 피아노가 아니다. 연필과 오선지만 있으면 된다.
"0.7㎜ 샤프 펜슬을 써요. 원래 굵은 심을 썼는데 수년 전에 바꿨어요. 처음에 멜로디 라인을 잡고, 오케스트라 반주는 나중에 따로 만듭니다. 가끔 컴퓨터를 사용해요. 오후나 늦은 저녁에 주로 작업하는데 한번에 대여섯 시간씩 매달립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다. 어린 시절 예일대가 있는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있는 집에선 초대된 실내악단의 연주가 끊이지 않았다. 언어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부친은 현재 뉴욕 헌터 칼리지 부학장이다.
―작곡 과정이 매우 빠르던데.
"특별한 노력을 하는 건 아닙니다. 곡들이 스스로 흘러 나옵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요."
―어린 나이에 작곡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저는 인간의 경험을 표현하기보다 순수한 음의 아름다움에 집중합니다. 집을 지을 때 설계가 필수적이듯, 제겐 음악적 구성이 더 중요합니다."
―심포니, 실내악, 협주곡, 오페라 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장르는?
"따로 없습니다. 다만 3악장짜리 심포니로 곡을 의뢰 받아 작업하다가 곡의 내적 구조상 4악장이나 5악장으로 늘어나기도 합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악기는?
"피아노 연주를 좋아합니다. 바이올린과 첼로는 지금은 켜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에 동원되는 모든 악기는 다 특장이 있고, 하나하나가 다 매력적입니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곡가는?
"(뜸을 한참 들인 뒤) 20세기 작곡가들입니다. 바르토크,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어려서 음악을 처음 배울 때는 바흐,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 등 클래식한 작곡가가 좋았습니다."
―본인이 진짜 천재라고 믿나?
"천재 소리를 들으려면 아이큐가 160이 넘어야 한다고 보지만 저는 안 그렇습니다.(웃음)"
―40세쯤 됐을 때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
"재미있는 얘기네요. 2031년인 셈인데…. 과학, 기술, 사회가 엄청 바뀔 것이지만, 전혀 감이 안 잡힙니다."
그린버그는 암벽 등반을 즐긴다. 태권도를 3년 배워 빨간 띠까지 땄다. 여자 친구를 묻자 "지금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뉴헤이븐에 있는 일반 공립학교를 졸업했고, 내년 가을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이번 대관령음악제에서 한국 청중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작곡가의 의도는 청중에게는 거의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청중 각자가 제 음악에서 자기 만의 감상을 하나씩 갖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