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음악에 비친 당신의 영혼을 살펴보세요

입력 : 2008.07.10 05:41
파벨 안드레예비치 페도토
프의 그림〈피아노 앞에 앉
은 나데즈타 즈다노비치의
초상〉. 톨스토이의 소설집
《크로이체르 소나타》표지
로 쓰였다./웅진씽크빅 제공

33세의 베토벤(Beethoven)이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쓰고 있을 당시만 해도, 훗날 이 작품이 톨스토이가 쓴 특이한 애정 소설의 소재가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청년 베토벤은 초기에 바이올린 소나타를 즐겨 썼고, 1803년 소나타 9번을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한 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루돌프 크로이체르(Kreutzer)에게 헌정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크로이체르 소나타'라는 별명으로 불리지요.

초연 당시 바이올린을 함께 연주했던 조지 브리지타워에게 헌정할 마음도 있었지만, 둘 사이에 어쩌다 다툼이 일어나 베토벤은 생각을 바꿨다고 합니다. 만약 다툼만 없었더라면 지금쯤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은 '크로이체르'가 아니라 '브리지타워 소나타'로 불리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Tolstoi)는 61세인 1889년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탈고합니다. 묘사가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이듬해에 금서(禁書)가 됐지만, 훗날 톨스토이 아내의 탄원으로 전집에 실리도록 허가를 받았습니다.

소설 속 러시아 귀족 포즈드니셰프는 아내와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즐겨 연주하던 아내 앞에 바이올리니스트 트루하쳅스키가 나타납니다. 남편의 권유로 둘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지만, 정작 남편은 격렬한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남편의 심경에 대한 묘사는 생생하기 그지 없습니다. "제가 특히 괴로워한 이유는 그의 우아한 외모와 새로움, 출중한 음악적 소양, 같이 연주하면서 생긴 친밀감, 음악, 특히 바이올린으로 아내의 감성을 자극했다는 점, 그리고 이 남자가 아내의 맘에 들었다기보다 이미 그가 제 아내를 하고 싶은 대로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앙상블이 지니고 있는 치명적 마력을 남편, 아니 톨스토이는 간파한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일요일 살롱 음악회에서 연주하는 곡이 바로 '크로이체르 소나타'입니다. 음악회가 다가올수록 소설 속 긴장감도 함께 증폭됩니다. 남편은 "이 소나타는 정말 무시무시한 음악입니다. 특히 '프레스토(매우 빠르게)' 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음악은 영혼을 고양시키지도 천박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음악은 영혼을 자극시킬 따름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남편의 의심은 증오와 살의로 이어지고, 소설은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특히 소나타 1악장 가운데 아다지오에서 프레스토로 바뀌는 대목에 대한 소설의 묘사는 마치 두 남녀가 연주 중에 하나가 되는 듯한 아찔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톨스토이 자신은 검소한 삶을 주장한 반면, 아내는 사교계 생활에 빠져들어 실제 이들 부부도 심각한 불화를 겪었다고 하지요.

〈전원 교향곡〉이나 〈환상 교향곡〉처럼 표제(標題)가 붙어있지 않는 한, 기악 음악은 '순수한 음표의 덩어리'일 뿐입니다. 음악을 들으며 자아를 투영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이 음악에서 흔들린 건 베토벤이나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아니라, 어쩌면 톨스토이 자신일지도 모르지요. 최근 한국에서도 펭귄클래식 시리즈를 통해 이 소설이 새롭게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사랑과 질투의 미묘한 선율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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