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연주의 '삑사리' 넘어선 음악의 감동

입력 : 2008.06.20 16:27   |   수정 : 2008.06.21 14:19

[클래식 토크]

김성현: 오늘 주제는 연주자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순간'입니다. 흔히 '삑사리'로 불리는 미스 터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정준호: 관객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죠. 자기 귀에는 '삑사리'가 많았는데 다른 이들은 반대로 "오늘 연주 좋았죠"라고 말하는 거죠.

김: 목욕탕 가서 '시원하다'는 아버지의 말에 열탕에 불쑥 들어갔다가 난생처음 배신감을 느낀 아들의 심정과 비슷하군요.

정: 제아무리 대가(大家)라도 미스 터치는 실연(實演)에서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암초 같은 거죠. 실수를 해도 연주 전체의 흐름을 잃지 않느냐, 아니면 암초에 좌초하고 마느냐에 연주자의 그릇 차이가 있을지도 몰라요.

김: 야구로 치면 불규칙 바운드 같은 것이군요.

정: 러시아의 명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Horowitz)는 83세 때인 1987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열었어요. 그 실황이 최근 음반(DG)으로 나왔습니다. 이 연주에 미스 터치가 적지 않죠. 호로비츠인 줄 몰랐다면 '학예회 연주회' 같다고 불평했을 수도 있습니다.
20세기를 풍미한 러시아의 명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그의 말년 녹음이나 실황에는 실수가 적지 않았지만, 노대가의 구김살 없고 맑은 연주에 많은 사람들은 지금껏 감동을 받는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20세기를 풍미한 러시아의 명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그의 말년 녹음이나 실황에는 실수가 적지 않았지만, 노대가의 구김살 없고 맑은 연주에 많은 사람들은 지금껏 감동을 받는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김: 많이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음반에는 실수가 전혀 없는데, 왜 실제 연주에서 미스 터치가 많은가'라는 겁니다.

정: 레코딩은 스튜디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반복된 연주를 통해 음원(音源)을 뽑아낸 뒤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죠.

김: 실연에는 실수가 있더라도 연주회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살아있다면, 음반은 깨끗하고 투명한 대신 그 분위기가 사라진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정: 어떤 음악가는 모나리자의 비유를 들기도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의 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투시력을 갖고 있다고 해보죠. 그 사람은 모나리자의 신비한 웃음과 우아한 자태 속에서 끔찍할 만큼 더러운 속옷을 보고 경악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나리자〉가 중요한 이유는 그녀의 '미소' 때문이지, '속옷' 때문은 아닐 거예요. 실수만이 아니라 연주 전체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김: '실수 없는 실황 연주'야말로 모든 연주자가 꿈꾸는 이상적 경지겠군요.

정: 호로비츠가 여든 넘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한 영상이 있어요. 나이 탓인지 실수도 많고 속도도 느리지요. 이때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미안해하는 호로비츠에게 다가와 말합니다. "너무 위대하신 분과 오랜만에 연주를 하니 오케스트라가 긴장했는지 자꾸 빨라지는군요. 오케스트라를 위해 한 번만 다시 해주시겠습니까?"
김성현 기자와 정준호 음악 칼럼니스트
김: 이런 말에 감동받지 않을 협연자가 있을까요.

정: 음악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실수의 유무(有無)가 아니라 연주자의 개성과 독창성, 인간미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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