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력 : 2008.06.18 17:04

'네비아', '블루맨그룹', '알레그리아'등 비언어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가 하반기 공연계를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언어를 최대한 배제한 채 이색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퍼포먼스 공연의 특징을 살펴보자.

‘언어’말고도 표현할 도구는 많다

비언어 퍼포먼스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대화를 통해 현실 재현을 추구하는 기존의 극 형태에서 탈피하여 다채로운 도구와 방법들을 이용해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다.

비언어 퍼포먼스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감정의 변이를 음성 언어가 아닌 풍부한 표정과 행동으로 대치시켜 독특한 분위기를 창출하고, 색다른 재미를 전달한다.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서 가장 직접적이고 손쉬운 ‘대사’를 최대한 제한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어려운 과제를 안겨준 퍼포먼스 단체들은 기꺼이 창의적인 방법들을 고안해 내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돌파구는 ‘몸’에 있었다.

지난 5월에 국내를 찾았던 '더 패밀리(The Family)'는 비언어 퍼포먼스의 원조이자 최고봉이라 평가받는 러시아의 극단 ‘리체데이(Licedei)’의 작품이다. 단순한 광대들의 몸짓이 아닌, 보다 난이도가 높은 테크닉과 다양한 감성의 마임 연기를 선보이며 인간의 희로애락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이 마임 컴퍼니에게 언어는 그다지 필요치 않다.

그들의 2001년도 작품으로 엉뚱한 가족 여섯 명의 기발하고 독특한 일상을 그린 '더 패밀리'는 다양한 소도구와 섬세한 상황 설정, 캐릭터에 충실한 능청스러운 연기로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를 선사했다.

작년 연말부터 올초까지 공연했던 체코 프라하산(産) '더 베스트 오브 이미지(The Best of Image)'는 판타지 퍼포먼스로서 몽환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이는 물체에 특수 안료를 발라 블랙 라이트라는 특수 조명을 비추면, 안료를 바른 부분만 어둠 속에서 야광 물체처럼 보이는 기법을 이용한 작품이다.

국가대표 체조선수와 뮤지컬 배우 등이 화려한 몸짓을 선보이며 사이사이에 노련한 마임이스트를 투입, 흐름을 부드럽게 이어갔다. 언어가 빠진 자리에는 이처럼 독특한 소재들이 제 역할을 담당한다.

넌버벌 퍼포먼스의 대표작인 '난타'의 경우는 각종 주방도구와 식재료, 타악기 등을 사용해 작품을 구성했고,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는 비눗방울과 종이 가루, 인공 거미줄, 큰 공 등을 이용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배우와 관객, 쌍방향 소통을 이루다

비언어 퍼포먼스는 관객과의 긴밀한 소통을 지향한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관객을 극 속에 참여시켜 상호교감을 이끌며 극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 텍스트 중심의 극에서 관객은 수동적인 입장에 머물며 원칙적으로는 극 진행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러나 비언어 퍼포먼스의 경우 관객들을 무대 위로 불러들이거나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며 일체감을 형성한다. 즉 관객들의 반응도 창조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활발한 쌍방향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블루맨그룹-메가스타 월드투어'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6월 10일부터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이 퍼포먼스는 음악, 코미디, 멀티미디어를 비롯한 첨단기술 등이 절묘한 조합을 이루는 작품이다.

인텔의 TV광고를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진 블루맨그룹은 '메가스타 월드투어'라는 쇼에서 천진난만한 캐릭터인 블루맨이 슈퍼스타가 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린다. 외계에서 온 것 같은 외모에 어수룩한 성격인 블루맨이 우연히 ‘록 콘서트 완전 정복’이란 매뉴얼 프로그램을 구입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이 퍼포먼스에서는 관객들의 참여와 반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대 전면에 설치된 3개의 대형 LED를 통해 따라해야 할 행동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거나 음성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머리 끄덕이기’, ‘팔 양쪽으로 벌려 흔들기’ 등을 유도하고 관객들이 이러한 행동을 집단적으로 하게 되면 순진한 블루맨은 단시간 내에 톱스타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스타란 관객들이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직접 제작한 PVC 파이프 악기를 사용한 라이브 연주와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더 패밀리'의 경우는 무대 앞쪽에 앉은 관객 한 명을 지목해 전화를 받게 하거나 객석으로 뛰어들어 갑작스런 베개싸움을 청하는 등 난처한 상황을 계속 만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이 같은 소수의 관객 참여를 통해서도 비언어 퍼포먼스는 충분히 작용과 반작용이 이루어지는 인터랙티브형 공연이 되고, 이는 또 다른 창조행위를 위한 훌륭한 재료가 된다.

꿈에 날개를 달다

캐나다의 대표적인 서커스 단체인 ‘서크 엘루아즈’가 선보이는 하늘 3부작인 '네비아(Nebbia)'는 '노마드'(2002), '레인'(2003)의 완결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7월 9일부터 20일까지 아시아 최초로 국내에서 공연될 '네비아'는 서커스의 대가로 불리는 다니엘 핀지 파스카의 환상적인 연출력으로 만들어진 퍼포먼스이다.

이탈리아어로 안개를 뜻하는 '네비아'는 어린 시절의 꿈을 형상화했으며, 2007년 12월, 스위스에서 첫선을 보인 후 ‘최고의 테크닉을 넘어선 신개념 예술’, ‘모든 예술 분야에서 영감을 얻은 현존하는 최고의 공연’ 등의 극찬을 받았다.

'네비아'의 공동제작사인 크레디아의 정재옥 대표는 “꿈의 사이즈가 다른 작품이다. 스토리와 감동, 세련된 표현력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한 종합 퍼포먼스이다”라며 '네비아'는 기교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서커스와는 차원이 다름을 강조했다.

인간의 몸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와 형태를 추구하는 서커스. 서정적인 음악과 조명을 통해 예술로 재탄생된 서커스는 언어를 통해서는 결코 구현할 수 없는 환상성과 이미지를 그린다. 또한 웅장한 규모와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서크 듀 솔레이(태양의 서커스)’도 올 10월부터 12월 말까지 잠실종합운동장 내에 전용 텐트를 설치하고 '알레그리아(Allegria)'를 공연할 예정이다.

스페인어로 기쁨과 환희를 의미하는 '알레그리아'는 고도의 신체 테크닉을 바탕으로 상상을 뛰어넘는 방대한 스케일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아트 서커스’는 비언어 퍼포먼스의 대표적인 형태에 해당한다.

언어의 장벽 없이 행위를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이 같은 퍼포먼스들은 언제나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진화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예술의 신대륙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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