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뚝뚝' 끊어지는 극전개, 명연기로 '척척' 이어가네

입력 : 2008.06.13 23:18   |   수정 : 2008.06.14 07:09

제1회 차범석희곡상 당선작 '침향' 첫 무대

말줄임표(…)가 많았던 희곡은 무대에서 때로 어떤 진공 상태를 만들었다. 56년 만에 집에 돌아온 강수(박인환)가 중국으로 돌아가던 날, 영범(성기윤)이 처음으로 "아버지!" 하고 부를 때 강수는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팔순 넘은 형 강득(김길호)이 강수에게 "이제 가믄 다시는 몬 만날 수도 있데이" 할 때도 입과 발이 떨어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사람을 더 크게 흔드는 법이다. 눈가를 훔치는 관객도 있었다.

제1회 차범석희곡상 당선작 《침향》(김명화 작·심재찬 연출)이 지난 11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초연됐다. "이념으로 갈라진 한국 현대사를 화해로 풀어보려고 한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던 희곡은 박인환·박정자·손숙·김길호·정동환 등 숙련된 배우들을 만나 무대언어로 다시 태어났다.

좌익 운동을 하고 전쟁 통에 월북했던 강수가 56년 만에 귀향하며 출발하는 이야기다. 아내 애숙(손숙)과의 상봉은 유예된다. 애숙이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강수가 데려온 딸 영순(이지하)과 아버지 없이 자란 아들 영범의 만남도 어색하기만 하다. 강수의 죽창에 아버지를 잃었던 친구 택성(정동환)이 낫을 들고 나타나며 갈등이 고조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극은 낡은 필름처럼 뚝뚝 끊겼다. 56년 전 강수가 집을 떠날 때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 10년 전 죽은 어머니(박정자)가 장독대에서 나와 강수에게 무릎베개를 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 등에서다. 애숙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죽은 귀신들과도 대화한다.
달밤 강수(박인환)의 회상 장면. 어머니(박정자)는“머스마가 옛날 얘기 좋아하만 가난하게 산다”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시뮤지컬컴퍼니 제공
달밤 강수(박인환)의 회상 장면. 어머니(박정자)는“머스마가 옛날 얘기 좋아하만 가난하게 산다”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시뮤지컬컴퍼니 제공
이 연극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생강굴이다. 애숙이 강수와 사랑을 나누고, 시집살이가 고될 때 눈물 흘리고, 강수의 좌익 활동 문건을 숨긴 곳이다. 애숙이 56년간 감춘 공책을 영범이 읽어 내려가는 장면도 밀도가 좋았다. 박정자의 화술, 손숙의 꾸밈없음, 박인환의 내면 연기, 이지하의 희극성 등이 돋보였다. 거대한 산을 옮겨놓은 무대미술(박동우)도 호평받았지만 "템포가 느리다" "택성이 낫을 내려놓는 대목이 어색하다"는 평도 나왔다.

극의 마지막 장면. 애숙은 "꿈에 영범 아버지가 댕겨 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손자와 함께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무대는 암전되고 산에 커다란 가족사진이 영사된다. 어머니의 묘와 생강굴, 진달래와 개나리와 억새를 액자틀로 쓴 운치 있는 엔딩이었다.

▶29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02)577-1987

연극 '침향'. 제1회 차범석희곡상 당선작 공연입니다.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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