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바이올리니스트로 무대에 서다

입력 : 2008.06.15 23:25

예술의전당 사장 내정 취소 후 '백의종군'

14일〈마이 라이프, 마이 뮤직〉콘서트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민 서울대 명예 교수는 합주, 지휘, 협연, 해설까지 1인 4역을 선보였다. /예술의전당 제공
"'불국사 다방'이 어디냐고 묻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1965년 대학 졸업하고 유학 가려고 의기양양하게 국립극장에서 오케스트라 반주로 도미(渡美) 독주회까지 열었죠. 그런데 집안에서 부도가 나는 바람에 이듬해 바이올린을 팔고 수도극장 앞에서 다방을 1년 반 동안 경영했어요."

바이올리니스트 김민 서울대 명예교수가 14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콘서트 〈마이 라이프, 마이 뮤직〉 무대에서 소탈한 '신상 발언'으로 유쾌한 음악회를 연출했다. 최근 예술의전당 사장 내정자로 지명됐다가 연극·뮤지컬 등 공연계 일부의 반발로 내정 취소된 이후 음악가로 처음으로 서는 '백의종군(白衣從軍)' 무대였다.

예의 검은 뿔테 안경에 세련된 연미복 차림으로 나온 김 교수는 이 무대에서 실내악 리더, 지휘, 해설과 협연까지 '1인 4역'을 펼쳐 보였다. "당시 다방 이름을 멋있게 지으면 망한다고 해서 인수한 뒤 '불국사 다방'이라고 지었는데, 결국 1년 반 만에 모두 다 들어먹었다"고 한 김 교수는 "사람들은 모두 제가 미국으로 간 줄 알았지만, 실은 당시 악기조차 없었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끌어냈다.

이 시리즈는 한국의 대표적 음악가들이 자신의 삶을 연주와 함께 들려주는 공연이다. 김 교수는 1965년부터 40여 년간 몸담고 있는 실내악단인 〈서울 바로크 합주단〉과 함께 무대에 섰다.

그는 "당시 바로크 음악이나 실내악 발전에 대한 필요성은 크게 느끼고 있었지만 인적·물적 자원은 부족하기만 했다. 을지로 6가의 조그맣고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연습한 뒤 동대문 시장에서 빈대떡 한 장 놓고 막걸리를 마시며 행복에 젖었던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 날 김 교수는 〈서울 바로크 합주단〉의 리더로 단원들과 합주를 했다. 또 별도의 지휘자를 두지 않는 실내악단의 특성상 곡이 시작할 때는 오른손으로 잡은 활로 지휘 사인을 내렸다. 그는 "실은 지휘하는 것은 아니고 박자만 흔드는 것"이라고 말해 객석에선 다시 웃음이 터졌다.

2부에서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연주할 때는 비올리스트 최은식 교수(서울대)와 함께 협연자로 나섰다. 연주 중간중간 마이크를 잡은 김 교수는 "너무 말을 못해서 비싼 돈 내고 오신 청중에게 미안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직접 써온 메모를 바탕으로 음악 사연들을 풀어놓았다.

"1977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니벨룽의 반지》 100년 기념 프로덕션을 무대에 올렸는데 당시 연출에 반대하는 시위가 심해서 단원들도 절반쯤은 참여하지 않았어요. 그 데모 덕분에 대신 제가 단원으로 들어간 거죠."

올해까지 김 교수는 31년째 유서 깊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매년 여름 활동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사장 내정 취소로 인해 심경은 복잡할 법했지만, 김 교수는 이 날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공연 직후 무대 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사람도 혼자 사는 것도 좋지만 함께 어울려 살듯이, 음악도 어울려서 함께 조율하는 실내악을 할 때 아름답다. 실내악이 더욱 잘 될 수 있도록 소박하고 겸손하게 남은 미래와 인생을 걸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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