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해무'
집어등(集魚燈), 그물, 로프, 삐걱거리는 갑판, 비옷과 장화 차림의 선원…. 관객은 입장할 때 〈전진호〉에 승선하는 기분이다. 귀로는 "쏴쏴―" 파도 소리를 밀어넣는 이 연극 《해무(海霧)》는 뭔가 거대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으로 육박해온다.
선장이 진 빚을 갚으려면 이번엔 꼭 만선(滿船)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쫓기는 어부들이 거친 바다 위에서 겪게 되는 험한 삶의 이야기다. 고기가 안 잡히자 조선족 밀항자들을 태우게 되고, 해경(海警)을 피해 태풍 쪽으로 숨고, 폭풍우는 견뎠지만 밀항자들이 집단 질식사하는 등 전진호의 항해는 고난의 연속이다. 그물을 끌어올리는 함성, 크렁크렁 모터 소리, 선실의 밤, 거친 몸싸움, 선원과 조선족 여인의 사랑 같은 장치들이 집중력을 높여준다. "아내도 갔다/ 남편도 갔다/…/잘 살아보겠다고 한국에 갔다~" 등 조선족의 노래는 이 연극의 풍경을 더 쓸쓸하게 만든다.
《해무》는 클라이맥스까지 속도와 리듬감이 좋다. 시끄러운 기관실에서 소리 지르며 사랑하는 남녀, 시체 처리를 놓고 상승하는 갈등, 주검은 바다에 내던지는데 "풍덩풍덩-" 가슴을 때리는 효과음, 엉망으로 미쳐가는 선원들…. 작가(김민정)의 상상력과 연출(안경모)의 구성력, 배우들의 호연이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줬다. 물질하는 어부들을 극사실적으로 잡아낸 장면들도 힘찼다. 그러나 극의 마무리는 예측가능했다. 사회적인 발언을 하려다 만 것 같고, 어떤 반전이나 희망도 보여주지 않은 채 '침몰하는 드라마'로 끝난 게 아쉬웠다.
▶22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 (02)744-7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