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5.30 16:41
| 수정 : 2008.05.31 18:37
대한민국 1세대 재즈 드러머 류복성씨
재즈 드러머 류복성(67)씨가 24일 서울 국립극장 야외무대에 섰다. 군복 바지에 티셔츠 차림인 류씨는 노병(老兵) 같은 분위기로 주말 저녁 무료공연을 즐기러 온 시민들에게 흥겨운 연주를 선사했다. 그는 17세 때 미8군에서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해 50년 넘도록 드러머이자 타악기 주자로 살아왔다.
요즘에야 재즈를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류씨가 드럼에 몰두하던 세월은 늘 배고프고 알아주는 사람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연주를 수없이 들었다. 1970~80년대 한창 인기였던 범죄수사 드라마 '수사반장' 주제곡 초반부의 그 긴박한 타악기 소리가 바로 류씨의 봉고 연주였다.
요즘에야 재즈를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류씨가 드럼에 몰두하던 세월은 늘 배고프고 알아주는 사람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연주를 수없이 들었다. 1970~80년대 한창 인기였던 범죄수사 드라마 '수사반장' 주제곡 초반부의 그 긴박한 타악기 소리가 바로 류씨의 봉고 연주였다.
류씨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자기 스튜디오를 갖고 있다. 연습도 하고 학생들에게 타악기 강습도 하는 곳이다. 어둑한 지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타악기들이 늘어선 스튜디오 한구석에서 류씨를 만났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고 한다. 50년 넘게 드럼을 두드리니 어떤 세상이 열리던가.
"재즈가 이 땅에 제대로 심어지길 바랐다.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재즈 팬이 많은 일본에서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재즈 음악을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세상이 열리길 바랐다. 사람들의 귀가 열리고 언론이 애정을 갖는 그런 시대가 열리길 바랐다. 그러나 열리지 않더라."
―최근 재즈 애호가들이 부쩍 늘지 않았나.
"달라지긴 했다. 재즈를 배우러 유학도 가는 세상이니까. 재즈 클럽에서 밴드를 이끌고 연주를 할 수도 있고, 대기업이나 대학 행사에서 초청도 해주니 달라지긴 했다. 욕심 같아선 매일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재즈 전문 라디오 방송도 있었으면 좋겠고, 재즈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좋겠다."
―재즈 하면서 인정받지 못해 서러운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예전엔 나이트클럽에서 댄스 음악을 연주하기 전에 한두 시간씩 재즈를 연주했다. 그때 지배인이 '연습은 집에 가서 하라'면서 듣기 싫다고 해 싸우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알아주지 않으니 늘 배고프고 돈도 없었다."
―언제부터 '류복성'을 알아주던가.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 수사반장 주제음악이 나오면서, 갑자기 그 봉고 소리의 주인공이 류복성이란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면서 기사도 나오고 하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더라."
―재즈 드러머 외에 다른 일을 시도해본 적은 없나.
"나는 '지독한 재즈 딴따라'다. 경기도 용인 출신인데 고등학교 때부터 재즈를 한다고 하니까 집안에서 '왜 딴따라를 하려고 하느냐'고 말렸다. 그래도 미군기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찾아낸 재즈 음반을 들으며 빠져들었다."
류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미8군 라디오를 듣다가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재즈에 관한 모든 것은 어렵게 구한 음반을 들으며 혼자 공부했다.
―아들도 드럼 연주를 한다고 하던데 아버지의 영향인가.
"앞으론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걸어온 길이 너무 고생스러워서 아들이 드럼을 치는 것에 반대했다. 아들에게 꼭 음악을 하고 싶다면, 그 분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작곡을 배우라고 했다. 몇 년 하는 듯하더니 그래도 드럼을 배우겠다며 내게 가르쳐달라고 하더라. 차마 내가 가르칠 순 없어서 후배에게 부탁했다."
―드럼 외에 다른 타악기는 무엇을 연주하나.
"봉고, 콩가, 팀발레스가 있다. 1960년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음반을 듣다가 봉고 소리를 듣고 반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유명한 타악기 연주자가 주한미군 부대에서 연주를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3개월을 배웠다. 음악 하는 사람이 무슨 돈이 있겠냐며 가끔 술이나 사라고 하더라. 그래서 공짜로 배웠다. 나는 세 살 때부터 동네 농악대를 따라다녔을 정도로 타악기 소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못 나가게 하면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고 하더라."
―50년을 연주해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나.
"스무 살 때는 멋도 모르고 했고 30대는 고집스럽게 했다. 50년을 하니까 내 음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도 죽을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리고 한국 사람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류복성의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늘 군복 바지를 입는 이유는?
"편해서다. 타악기 주자니까 이것 저것 들고 다니며 움직여야 할 때가 많다. 한국에서 재즈 음악을 한다는 것은 전쟁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군복을 입는다."
―흰머리를 검게 염색하지는 않나.
"일찍 머리가 세어서 예전엔 했다. 아줌마처럼 파마도 했었고. 그러나 나이를 먹으니까 그게 다 위선처럼 느껴져 이젠 안 한다."
―보통 사람들이 재즈를 좋아하기까지는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 제일 쉽게 재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클래식 음악엔 명작곡가가 있고, 재즈엔 명연주자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연주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역사다. 처음 듣는 사람들에겐 루이 암스트롱의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부터 시작하라고 하고 싶다. 어렵고 과격한 스타일의 재즈를 들으면 친근해지기가 어렵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고 한다. 50년 넘게 드럼을 두드리니 어떤 세상이 열리던가.
"재즈가 이 땅에 제대로 심어지길 바랐다.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재즈 팬이 많은 일본에서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재즈 음악을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세상이 열리길 바랐다. 사람들의 귀가 열리고 언론이 애정을 갖는 그런 시대가 열리길 바랐다. 그러나 열리지 않더라."
―최근 재즈 애호가들이 부쩍 늘지 않았나.
"달라지긴 했다. 재즈를 배우러 유학도 가는 세상이니까. 재즈 클럽에서 밴드를 이끌고 연주를 할 수도 있고, 대기업이나 대학 행사에서 초청도 해주니 달라지긴 했다. 욕심 같아선 매일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재즈 전문 라디오 방송도 있었으면 좋겠고, 재즈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좋겠다."
―재즈 하면서 인정받지 못해 서러운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예전엔 나이트클럽에서 댄스 음악을 연주하기 전에 한두 시간씩 재즈를 연주했다. 그때 지배인이 '연습은 집에 가서 하라'면서 듣기 싫다고 해 싸우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알아주지 않으니 늘 배고프고 돈도 없었다."
―언제부터 '류복성'을 알아주던가.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 수사반장 주제음악이 나오면서, 갑자기 그 봉고 소리의 주인공이 류복성이란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면서 기사도 나오고 하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더라."
―재즈 드러머 외에 다른 일을 시도해본 적은 없나.
"나는 '지독한 재즈 딴따라'다. 경기도 용인 출신인데 고등학교 때부터 재즈를 한다고 하니까 집안에서 '왜 딴따라를 하려고 하느냐'고 말렸다. 그래도 미군기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찾아낸 재즈 음반을 들으며 빠져들었다."
류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미8군 라디오를 듣다가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재즈에 관한 모든 것은 어렵게 구한 음반을 들으며 혼자 공부했다.
―아들도 드럼 연주를 한다고 하던데 아버지의 영향인가.
"앞으론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걸어온 길이 너무 고생스러워서 아들이 드럼을 치는 것에 반대했다. 아들에게 꼭 음악을 하고 싶다면, 그 분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작곡을 배우라고 했다. 몇 년 하는 듯하더니 그래도 드럼을 배우겠다며 내게 가르쳐달라고 하더라. 차마 내가 가르칠 순 없어서 후배에게 부탁했다."
―드럼 외에 다른 타악기는 무엇을 연주하나.
"봉고, 콩가, 팀발레스가 있다. 1960년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음반을 듣다가 봉고 소리를 듣고 반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유명한 타악기 연주자가 주한미군 부대에서 연주를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3개월을 배웠다. 음악 하는 사람이 무슨 돈이 있겠냐며 가끔 술이나 사라고 하더라. 그래서 공짜로 배웠다. 나는 세 살 때부터 동네 농악대를 따라다녔을 정도로 타악기 소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못 나가게 하면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고 하더라."
―50년을 연주해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나.
"스무 살 때는 멋도 모르고 했고 30대는 고집스럽게 했다. 50년을 하니까 내 음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도 죽을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리고 한국 사람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류복성의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늘 군복 바지를 입는 이유는?
"편해서다. 타악기 주자니까 이것 저것 들고 다니며 움직여야 할 때가 많다. 한국에서 재즈 음악을 한다는 것은 전쟁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군복을 입는다."
―흰머리를 검게 염색하지는 않나.
"일찍 머리가 세어서 예전엔 했다. 아줌마처럼 파마도 했었고. 그러나 나이를 먹으니까 그게 다 위선처럼 느껴져 이젠 안 한다."
―보통 사람들이 재즈를 좋아하기까지는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 제일 쉽게 재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클래식 음악엔 명작곡가가 있고, 재즈엔 명연주자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연주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역사다. 처음 듣는 사람들에겐 루이 암스트롱의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부터 시작하라고 하고 싶다. 어렵고 과격한 스타일의 재즈를 들으면 친근해지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