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代) 잇는 지휘봉

입력 : 2008.05.25 23:13

정명훈 아들? 지휘자 정민!…
아버지 권유로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자원봉사
"나의 첫 악단… 아이들 음악 열정 느낄 수 있어"

25일 서울 은평구 서울 시립 소년의집 강당.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성남 국제 청소년 관현악 페스티벌에 참가한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오는 28일 공연을 앞두고 한창 리허설 중이었다. 지휘자는 20대 젊은이였다. "트롬본은 여기서 박자가 바뀌면 안됩니다"라고 질책한 젊은 지휘자는 "여기서는 호른이 확신을 갖고 조금 더 강하게 소리를 냈으면 좋겠어요"라며 단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부터 고교 3학년생까지 10대 단원 60여 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지시 하나 하나에 소릿결이 달라졌다.

지난해부터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고 있는 지휘자 정민(24)씨는 서울시향 예술감독인 지휘자 정명훈의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가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1984년, 자르브뤼켄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해서 고교 과정을 마친 뒤 서울대 음대에 입학해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영어·불어·독어 등에 능통하고 더블 베이스·바이올린·피아노 등을 공부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지휘에 전념하고 있다. 리허설이 끝나고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소년의집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지휘자 정민(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씨가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와 연습을 마친 뒤 함께 모였다. 그는 지휘자 정명훈의 셋째 아들이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지휘자 정민(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씨가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와 연습을 마친 뒤 함께 모였다. 그는 지휘자 정명훈의 셋째 아들이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는 그의 첫 악단인 셈이다. 지난해부터 베토벤 교향곡 1~6번을 이 악단과 함께 연주해왔다. 그는 "이 오케스트라와 먼저 연주했던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다. 여느 전문 교향악단에서도 쉽게 찾아내기 힘든 열정을 여기서는 언제든 느낄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휘자가 지시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열심히 음악을 하려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점점 더 오케스트라가 좋아진다"며 웃었다.

1979년 창단한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는 부모를 여의거나 헤어져있는 아이들이 음악을 향한 열정 하나만으로 모여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현악 합주로 학교 행사나 학예 발표회 정도를 소화했지만, 부산로터리클럽과 홍춘선 전 효성여대 음대 학장 등 뜻있는 인사들이 악기를 후원해주면서 관현악단으로 발전해갔다.

이 악단을 통해 음악의 꿈을 가꾼 아이들이 자라나 매년 2~5명씩 음대에 진학하고, 부산·마산·포항·천안시향 등 전국 오케스트라에서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정민씨는 지난해 합류한 '음악 자원봉사자'이자 '지휘 선생님'인 셈이다. 부산 소년의집 박 불케리아 수녀는 그에 대해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지난해부터 거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내려와서 연습하고, 지금은 공연 2주를 앞두고 매일 학생들과 함께 리허설할 정도로 열정이 있다"고 말했다. 28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콘서트에서는 〈신세계〉 교향곡과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번(협연 박지윤) 등을 연주한다.

올해부터는 '정명훈의 아들'이라는 수식어 대신에 '지휘자 정민'이라는 이름을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게 된다. 그는 20~30대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아시아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창단해서 오페라 보급에 적극 나선다. 내년쯤 공연할 첫 작품으로는 《라 보엠》과 《라 트라비아타》 가운데 하나를 놓고 고민 중이다. 그는 "오페라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지역 학교와 구민회관 등 어디든 찾아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오페라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 연주회, 28일 오후 7시30분 성남아트센터, (031)783-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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