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미술관 상금 걸린 '창녀'가 배우였다고?

입력 : 2008.05.20 23:27

'창녀 퍼포먼스'의 전말
작가 "미술 기사를 왜 사회면에 싣나" 항의

지난달 17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관객들을 상대로 "여기에 창녀가 초대됐다. 창녀를 찾아낸 분께 120만원을 드린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벌인 김홍석(44) 상명대 공연학부 교수가 "문제의 '창녀'는 성매매 여성이 아니라 배우"라고 말했다.

김씨는 19일 본지에 전화를 걸어 "최근 해당 배우를 국제갤러리에 불러 도록에 들어갈 얼굴 사진을 찍었다"며 "사진 찍는 날 사실을 밝히는 기자회견도 열까 했지만 배우와 내가 바빠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 퍼포먼스의 제목은 〈포스트 1945〉였다. 퍼포먼스 당일 김씨는 기자 간담회에서 "인간은 누구나 '나는 좋은 사람이고, 돈에 대한 욕망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그런 환상에서 깨어나 불편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를 통해 불법 영업을 하는 안마시술소 사장을 소개 받아 그곳 여직원을 섭외했다"고 말했다.

이 퍼포먼스는 국제갤러리 인턴 A(25)씨가 다른 관객들과 섞이지 않고 전시장을 맴도는 30대 여성에게 다가가 "혹시 창녀분?"이라고 물으면서 끝났다. 관객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작가 김씨는 A씨에게 상금 120만원을, '창녀' 역할 배우에게 일당 60만원을 건넸다. '창녀' 역할 배우가 전시장을 떠난 뒤 김씨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으며 "보고 있기가 너무 괴로워 중간에 그냥 가시라고 할까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홍석씨가 자신의 퍼포먼스〈포스트 1945〉를 위해 갤러리 벽에 붙인 안내문. /국제갤러리 제공
김홍석씨가 자신의 퍼포먼스〈포스트 1945〉를 위해 갤러리 벽에 붙인 안내문. /국제갤러리 제공
기사 보도를 전후해 김씨는 여러 차례 본지와 통화하며 "왜 미술 기사를 사회면에 쓰느냐" "내 작품이 (사회적 측면이 아니라) 오로지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논의되길 바란다" "부모님이 악플을 보는 게 싫다. 학장님도 '왜 그런 일을 해서 학교에 누를 끼치냐'고 했다"고 말했다.

19일 통화에서 김씨는 "내가 그때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은 내 작품의 맥락도 모르면서 악플을 달 네티즌과 전체 전시에서 특정 부분만 부각시키려는 기자를 말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우'라는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을 거절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의와 윤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대로, 이 퍼포먼스는 미술의 본질과 작가의 책임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남겼다. 미술평론가 B씨는 "이 퍼포먼스의 핵심은 작가가 관객을 윤리적으로 갈등하게 만드는 '리얼리티 쇼'라는 데 있다"며 "리얼리티 쇼의 핵심인 '창녀'가 실은 배우였다면 작가가 의미 없이 일방적으로 관객을 함정에 빠뜨린 '싸구려 연극'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중간에 내가 기사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은 사적(私的)인 통화였기 때문에 퍼포먼스의 일부가 아니었다"고 했다. 인턴 A씨도 각본에 따라 고용된 사람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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