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먼저 개막해 호평받은 한일 합작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젊은 화가가 섬세한 선과 따뜻한 색채로 전국의 오래된 구멍가게를 그린 《기억의 소풍 전》,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의 리사이틀, 소설가 박상륭의 새 장편 소설 《 잡설품(雜說品) 》과 정영문 소설집 《목신의 어떤 오후》. 조선일보 문화부가 월요일 아침 배달하는 '문화 상차림' 이번 주 메뉴입니다.
[연극] 일본서 호평받은 韓日합작극
거대한 감정의 격랑을 만드는 연극이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다. 올해 단 한 편의 연극을 뽑아야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올릴 작품이 바로 《야끼니꾸 드래곤》(연출 양정웅)이라는 중평이다. 예술의전당과 일본 신국립극장이 공동 제작한 이 연극은 지난달 일본에서 초연돼 평단과 대중 모두를 만족시켰다. 가슴을 쿵 울리는 인생이 들어 있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재일교포 가족의 이야기다. 큰딸과 둘째딸은 아버지가, 셋째딸은 어머니가 데려온 자식이고, 이 부부가 낳은 막내 토키오가 해설자 역할을 겸한다. "술맛은 먹어봐야 알고 인생은 살아봐야 안다"고 말한 재일교포 정의신의 희곡, 신철진 고수희 등 우리 배우들의 연기력이 빛난다. 대사의 90% 이상이 일본어라 자막을 보는 수고는 무릅쓰고서라도 볼 만한 연극이다. 20~25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80-1300
[문학] 박상륭·정영문의 심오한 新作
이번 주에 소개하는 소설가 박상륭과 정영문은 난해하고 실험적인 글쓰기로 유명한 작가들이다.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 등을 통해 동서고금의 종교와 신화, 철학을 아우르는 심오한 글쓰기를 해 온 박상륭이 이번주 선보일 신작 장편 《잡설품(雜說品)》은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죽음의 한 연구》 5부작의 완결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서 생존을 위한 어떤 희망적인 징후도 발견하지 못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정영문의 소설은 늘 불안과 우울, 의미 없어 보이는 독백들로 가득 차 있다. 신작 소설집 《목신의 어떤 오후》는 체념의 색채가 더욱 짙어진 가운데, 무의미한 삶을 그래도 절대적으로 긍정함으로써 자기 치유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들의 몸부림을 전한다.
[전시] 섬세하고 따뜻한 펜화
거무튀튀한 기와지붕 위에 햇살이 흐른다. 도로변에 내놓은 빙과 냉장고엔 '해태' '빙그레'같은 마크가 찍혀 있고, 가게 안 진열장에는 과자와 가루비누와 때수건과 담배가 쌓여 있다.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면 파마머리 부스스한 안주인이 파리채로 파리를 쫓다 말고 "뭐 드릴까요?" 할 것 같다.
서양화가 이미경(38)씨가 24일까지 서울 소격동 빛갤러리에서 《기억의 소풍 전》을 열고 오래된 구멍가게를 그린 펜화 22점을 건다. 서울, 강릉, 포항, 부산, 곡성, 군산 등지를 돌며 산동네 구멍가게를 사생한 그림이다.
그녀의 펜화는 선이 섬세하고 색이 따뜻하다. 형광등 켜진 냉장고 안에서 시들어가는 채소, 백열등 아래 놓인 사과와 귤, 막걸리 박스와 버스정류장 간판 등을 세세하게 그리느라, 이씨는 하루 10~15시간씩 두꺼운 판화지 앞에 앉아 사각사각 펜촉을 움직였다.
서울 변두리에서 자란 이씨는 "자잘한 물건이 잔뜩 쌓인 구멍가게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공간"이라며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 인생이 거기 다 있다"고 말했다. (02)720-2250
[클래식] 김지연 바이올린 리사이틀
새 음반 《세레나타 노투르노》를 발표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이 19·20일 오후 8시 이틀간 LG아트센터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피아니스트 김태형의 연주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비롯해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가운데 세레나데 등 음반에 수록된 곡을 들려준다. 1577-5266네덜란드 출신의 고음악 연주자 지기스발트 쿠이켄(Kuijken)이 이끄는 '라 프티트 방드(la Petite Bande)'는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
쿠이켄은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처럼 어깨 위나 가슴 위에 올려 놓고 연주하는 '미니 첼로'인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로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 1번>을 연주한다. 이어서 6명의 최소 편성으로 들려주는 비발디의 〈사계〉 등 음악 못지않게 연주 풍경 역시 이채로울 것 같다. (02)586-2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