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바르게 말하는 법도 모르나?"

입력 : 2008.05.14 23:38   |   수정 : 2008.05.15 06:30

칠순 평론가 구히서, 現 연극계에 고언

연극평론가 구히서는“객관성 여부보다는 얼마나 정직하게 쓰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칠순의 연극평론가 구히서가 한국연극을 꾸짖었다. 오는 16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쿠크박사의 정원》(연출 강대홍)과 관련된 인터뷰 자리에서다. 이 연극은 평론가(구히서)에게 헌정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신극 100년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구히서는 "난 평생 구경꾼의 자리에 있었다. 헌정 공연은 용감하게 피할 줄도, 뛰어들 줄도 몰라 어정대다 걸려든 것"이라며 무안해했다. 그리고 요즘 연극동네를 향해 고언(苦言)을 던졌다.

"극작가와 연출가는 참신해야 하고 배우는 노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반대다. 무대에는 젊은 배우들 유입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이든 배우들이 귀한 대접을 못 받는 게 안타깝다. 또 유행 따라 가는 연극들은 불어나고, 자리를 지켜야 할 정통극은 오그라들어 균형이 맞지 않고 있다."

1970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한 신문의 연극 담당 기자였고 연극평론가협회 회장도 지낸 구히서는 "바른 말을 바르게 하는 연극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바른 말'은 작가, '바르게 말하기'는 배우의 몫이다. 그는 "재료가 바르면 말이 바를 수 있고, 말이 바르면 재료가 엉터리여도 바로잡을 수 있다"며 "아이디어와 재치만 있는 연극이 잘 되는 풍토가 아쉽다"고 했다.

배우들의 어조(語調)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연극 관련 심사에 종종 참여한다는 구히서는 "개콘과 웃찾사의 언어가 어린이연극까지 지배하고 있다"며 혀를 찼다. 그는 또 "대학로에 소극장이 100개가 넘고 일상어를 주로 쓰면서 우리 배우들의 육성, 낭송조 대사 구사력도 약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등에서는 이제 마이크 없이는 연극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구히서는 "무대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보이는 연기'를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배우는 환상 자체가 아니라 환상을 전달하는 매개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생짜 그대로 나오는 연기는 '나쁜 연기'"라고 했다.

1940년대부터 숱한 연극을 본 평론가는 흔들리지 않고 명성을 지켜온 임영웅의 《고도를 기다리며》, 차범석의 역작 《산불》, 의자왕이 칼을 맞는 장면에서 "놔둬라, 내가 더 맞아야 풀린다"는 사관(史觀)을 보여준 오태석의 《백마강 달밤에》, 전쟁에서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파고든 노경식의 《달집》 등을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최근작으로는 《열하일기만보》의 앙상블에 갈채를 보냈다.

1978년 《물보라》에서 단역을 맡은 김동원은 그가 왜 전설적인 배우인지 증명했다고 한다. "광대패 중 한 명으로 대사도 없었어요. 그런데 우르르 몰려와 국밥 먹는 장면에서 무대엔 김동원밖에 안 보였습니다. 빈 수저질인데 그렇게 맛있게 먹을 수가 없어요. 추운 굿판, 뜨뜻한 국밥 한 그릇이 바로 전해졌습니다. 그런 게 배우가 주는 감격이에요."

《쿠크박사의 정원》은 존경받아온 의사 쿠크박사(이호재)의 감춰진 음모, '정원 가꾸기식 진료'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진동하는 스릴러다. 이 연극의 번역자이기도 한 구히서는 "간신히 턱걸이로 산 인생인데 너무 많이 누리는 것 같다"며 "나 같은 구경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9일 오후 연극평론가 구희서씨가 대학로에서 연극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연극평론가 구희서씨가 자신의 연극평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ecaro@chso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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