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비가 조화롭듯 인생도 그러해야…"

입력 : 2008.05.12 23:22

개인전 여는 동양화가 송수남

삼엄한 수묵 추상으로 이름난 동양화가 송수남(70)씨는 요즘 먹을 놓았다. 대신 긴 서양화 붓에 색색 아크릴 물감을 듬뿍 찍어서 붉고, 희고, 노란 꽃송이를 캔버스 가득 흐드러지게 그린다.

"난 수묵이 '절대'인 줄 알았어. 한 40년, 죽어라 시커먼 것만 그렸지.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나니 어느 날 문득 '이 세상에 절대가 어딨어?' 싶습디다."

송씨는 장성한 남매를 분가시키고 서울 평창동 집에 혼자 산다. 봄·여름이면 새벽 4~5시에 일어나 밤 11시쯤 취침하는데, 밥 먹고 산책하고 책 보고 며칠에 한번 제자들 전시회에 가는 걸 빼면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 꽃을 그리며 보낸다. 그가 20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가이아에 화사한 꽃 그림 20여 점을 건다.

송씨는 "내가 꽃 그림을 그린 지 이제 한 5년쯤 되았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자랐다. 느릿느릿 흐르는 전주천에서 첨벙거리고, 조경묘·경기전·한벽루 등 오래된 사당과 누각에서 사생을 했다. 홍익대를 졸업했고, 1975년부터 2004년까지 꼭 30년간 모교 미대 교수를 지냈다. 꽃과 나비를 그리기 시작한 건 은퇴할 무렵부터다. 그는 "나는 스케치하지 않고, 옛 선비들이 난을 치듯이 쓱쓱 그린다"고 했다. "재료는 서양 것이고, 그리는 방식은 동양적이죠. '먹으로 그리면 동양화, 유화 물감을 쓰면 서양화' 하는 구분은 예전에 떨쳐버렸고요."
서울 평창동에 있는 화가 송수남씨의 자택엔 대나무와 홍매가 우거졌다. 작업실엔 물감 마르길 기다리는 캔버스가 수십 점이다. 그는 흥에 겨워 유유자적 난을 치듯 꽃을 그린다.
서울 평창동에 있는 화가 송수남씨의 자택엔 대나무와 홍매가 우거졌다. 작업실엔 물감 마르길 기다리는 캔버스가 수십 점이다. 그는 흥에 겨워 유유자적 난을 치듯 꽃을 그린다.
그는 소문난 애주가였다. 신문사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에 '주량=소주 4홉'이라고 적기도 했다. 그런데 "요새는 술도 맛이 없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번잡스럽고, 오로지 내 마음에 꼭 드는 환한 색이 나왔을 때 가장 즐겁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아마 나를 '수묵 추상화가'로 기억할 테지만,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꽃 그림"이라고 했다. 꽃을 그리는 이유는 "그냥 꽃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이다.

"재미있는 것 하나 알려줄까요? 색(色)은 저 혼자 고와서 되는 게 아니라 '조화'더라고. 어떤 색이 고우냐, 아니냐 하는 것은 색 자체가 아니라 옆에 있는 색이 무슨 색이냐에 따라 달라지거든. 인생도 마찬가지지요. 근데 내가 시커먼 것(수묵 추상)을 그릴 때는 사실 이런 이치를 몰랐단 말이오, 허허." (02)733-3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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