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8.05 13:17
●전시명: '안과 밖 그리고 경계 위의 감각'
●기간: 8. 20 ─ 9. 30
●장소: 데이트갤러리(해운대해변로 298번길 5)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데이트갤러리에서 오는 8월 20일부터 9월 30일까지 단색화의 선구자이자,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기린 작가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김기린 재불작가는 미술가들 중 드물게 인문학 전공을 바탕으로 한 예술가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1961년 프랑스 파리 디종대학교에서 미술사 학사 과정을 시작으로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와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미술 학사와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작품 활동을 한 50여년간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국내의 주요기관과 프랑스 니스 이티네레르 화랑, 파리 자크 바레르 화랑 등 국외에서도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쳤다. 그의 작품은 디종미술관, 파리시립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예술문화센터,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소장 중이며 최근에는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다시금 주목받았다.
김기린 작가는 프랑스의 소설가 셍텍쥐페리(Saint-Exupéry, 1900-1944)를 연구하기 위해 프랑스로 향했을 정도로 시 문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언어의 한계를 느껴 글 대신 그림으로 그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점은 기본 조형요소 중 하나로 무수한 점들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이 맞닿이면 면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점은 시작일수도, 끝일 수도, 또한 선도 되고, 형태도 되고, 그 안에는 시간도, 생각도, 흔적도 있습니다.”라는 작가의 언급에서 볼 수 있듯 작품 속 점이 내포하는 무한의 의미가 담겨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단일 색조의 화면 속에 입체적인 점이 반복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형상을 띈다. 그는 캔버스나 종이에 큰 붓으로 한국의 오방색(흑, 백, 적, 황, 청)을 기반으로 한 유화물감을 여러 겹 칠하고 중간 크기의 붓으로 가로와 세로로 선을 그어 세밀하게 계획한 구역에 규칙적이면서도 조직적으로 점을 찍는다. 하나의 점을 완성 짓기까지 30번의 점을 찍는 행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수행적인 정신을 지닌다. 유화물감을 켜켜이 쌓는 과정에서 시간과 온도에 따라 발생하는 물감의 밀도와 농도 차이, 미묘하고 지속적인 점의 움직임으로 화면 속에서 그만의 독특한 리듬감을 만든다.

김기린은 음악에서 색을 본다. 그는 “멘델스존에서는 노란색이, 차이코프스키에서는 회색이, 베토벤에서는 녹색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의 회화가 단순히 시각 예술에 머물지 않고 청각, 정서, 지각이 교차하는 다층적 예술 경험을 창출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김기린은 점, 레이어, 반투명한 색, 흐릿한 경계 등을 통해 “보이되 완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를 회화적으로 구현한다. 그의 화면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행위 자체를 성찰하게 하는 감각적 장으로 기능하며, 관람자는 그 안에서 가시성과 불가시성, 안과 밖이 얽히는 긴장을 체험하게 된다.
그의 예술은 단색화의 정신성과 행위성, 촉각성을 토대로 한 실존적 탐구로 이어진다.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 등 실존주의 철학에 심취했던 그는 제목과 작업 과정까지 연결되며 철학적인 모습을 면밀히 보여준다. 김기린의 회화는 단순한 단색의 평면이 아니다. 그것은 감각과 존재가 층층이 쌓이며 형성된 시각적 시간의 구조다. 그 안에서 점은 반복 속에서 차이를 만들고, 겹침 속에서 기억을 환기하며, 사유 속에서 존재의 진동을 발생시키는 매개로 작용한다. 그의 점은 더 이상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발현되는 시간의 단위이자, 감각이 사유로 전환되는 지점, 그리고 회화가 침묵 속에서 말을 거는 방식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