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사람들은 왜 명반을 고집할까?

입력 : 2008.04.25 13:50   |   수정 : 2008.04.26 21:23
김성현: 음악 칼럼을 쓰고 방송을 진행하다 보면 명반(名盤)을 골라달라는 부탁을 꽤 받죠?

정준호: 모범 답안이 있어요. 노란색이나 빨간색 딱지가 붙은 음반을 사고 기왕이면 표지 디자인이 예쁜 음반을 고르라고 해요. 두세 장이 한 장 가격으로 묶여 나왔다면 '다홍치마'라고 하죠.

김: 무책임하신 건 아닙니까.

정: 노란색은 독일의 명 음반사인 도이치그라모폰(DG), 빨간색은 영국 EMI를 상징하죠. 브랜드가 역사나 전통적 가치를 보장한다는 뜻이죠. 디자인은 음반 제작에 공을 들였다는 의미고, 염가 재(再)발매는 충분히 본전을 뽑았기 때문에 대중화의 단계로 나간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김: 명반을 찾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떤 걸까요.

정: 자신이 고른 음반이 올바른 것인지 동의를 구하고 싶은거죠. 더 원색적인 질문도 있어요.

김: 뭡니까.

정: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 첼리스트 장한나, 지휘자 정명훈처럼 유명 음악인들을 A부터 D까지 등급을 매겨달라는 거죠.

김: 소고기 등급 매기는 것 같군요.

EMI제공 베토벤 삼중 협주곡(위) / 유니버셜뮤직코리아 제공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EMI제공 베토벤 삼중 협주곡(위) / 유니버셜뮤직코리아 제공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정: 똑같은 레퍼토리의 음반을 이것저것 비교해보는 것보다 다른 레퍼토리로 한걸음 넓히는 것이 한계 효용도 커요.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카라얀 지휘로 들었다면 다음엔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를 듣는 것보다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을 듣는 게 낫다는 거죠.

김: 새로운 곡에 도전하라는 뜻인가요.

정: A출판사의 '파우스트'가 감동적이라고 해서 B출판사의 '파우스트'를 다시 구입하지는 않잖아요. 구두를 샀다면 걸맞은 양복도 사고, 핸드백도 사야지 검정 구두, 빨간 구두만 살 수는 없잖아요.

김: 이멜다의 고민인가요. 유독 클래식 음악계에서 같은 작품을 서로 다른 해석이나 연주로 비교 청취하려는 욕구가 큰 이유는 뭘까요.

정: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심리일 수도 있어요. 음악은 다른 예술보다 훨씬 정서에 호소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낯선 것에 대한 모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큽니다.

김: 누구 것이면 무조건 이름값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명품 선호 심리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정: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예로 들면 저는 모리스 장드롱(Gendron)의 연주로 처음 즐겨 들었어요. 어느 날 라디오에서 같은 곡이 흘러나오는데 음질도 나쁘고, 영 낯설더라고요. 심드렁해 있는데 정작 끝난 뒤 이 곡을 사실상 발굴한 명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Casals)의 연주라고 소개했어요.

김: 절대 지존을 몰라뵈었으니 아찔했겠군요.

정: 결국 음악이 주는 감동이라는 건 김춘수의 시(詩) 같은 것 아닐까요. 제아무리 향기가 좋다고 해도,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다가와서 꽃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김: 입문자들을 위해 명반이 아닌 명곡을 다섯 작품만 꼽아볼까요.

정: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은 어떨까요.

김: 이 음반도 빨간색이나 노란색으로 사면 되는 건가요?

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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