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썸 걸즈' '블랙버드'의 이석준·추상미 부부
李 "아내 아닌 다른 인물로 만나긴 싫어"…
秋 "왜? 내가 무서워?"
추상미·이석준 부부는 요즘 대학로로 출퇴근하고 있다. 추상미는 3년 만의 연극 무대인 《블랙버드》를 공연 중이고, 이석준은 연극 《썸걸즈》 개막을 사흘 앞둔 몸이다. 열두 살 때 성관계를 한 스물여덟 연상의 사내를 15년 만에 찾아온 《블랙버드》의 여자(추상미)나, 결혼을 앞두고 옛 애인 4명을 차례로 만나는 《썸걸즈》의 남자(이석준) 설정은 신혼 5개월째인 이 부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8일 광화문에서 두 배우를 만났다.
이석준=상미씨 연극할 땐 주변 사람들이 괴롭다. 연기 욕심이 많아 집에 들어와서도 대본 읽고 고민을 한다. 《블랙버드》는 연습해주느라 내가 대사와 동선을 욀 정도다. 가사(家事) 부담도 늘었다.
추상미=난 하나에 빠지면 나머지는 의욕 상실이다. 그것만 생각한다. 연습 안 하고 TV 오락프로를 보는 석준씨가 신기하다. 내 연기의 문제점을 짚어주는 믿음직한 모니터이기도 하다.
이=그런데 내 무대에 대한 평가는 그토록 냉정할 수가 없다. 내가 공연한 뮤지컬 《헤드윅》을 보고 자그마치 30점을 줬다. 이틀간 전화도 안 받고 잠적했다.
추=충격요법이었다. 그렇게 고통을 줬더니 다음엔 훨씬 연기가 좋아졌다. 일주일 뒤에 97점 준 건 까먹었나봐.
이=우린 연기 스타일이 다르다. 상미씨는 인물의 내면부터 잡아나가야 하고, 난 겉모습이나 구조부터 만든다.
추=TV 드라마는 인물이 단순하다. 그래서 연극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블랙버드》의 여주인공 우나는 깊고 입체적이다.
이=《썸걸즈》는 상미씨가 대본 보고 내게 추천했다. "남자라면 해봐야 하는 작품"이란다.
《썸걸즈》에는 각기 다른 4가지 패턴의 여자가 등장한다. 순진해서 답답한 1번(남자 속마음은 '이제 싫증난다'), 섹시한 것이 전부인 2번('너와는 잠만 자고 싶다'), 너무 지적이라 겁나는 3번('정말 사랑하지만…'), 선배의 부인으로 마음이 끌리는 4번('책임지고 싶진 않다') 등이다. 추상미에게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추=4번이다. 아니면 "오빠~" 하고 콧소리 내는 2번?
이=제일 어린 것만 찾지? (웃음) 난 배우 추상미가 굉장히 강한 여자인 줄 알았다. 살아보니 약해서 다독거려주고 안아줘야 하는 사람이다. 청소, 빨래도 해줘야 하고.
추=아버지(배우 추송웅)가 일찍 돌아가셔서 부성의 결핍 같은 게 있다. 그런데 내가 집중하면 뭐든 잘한다. 심지어 요리까지.
이=난 낙천적이고 상미씨는 아니다. 행복해서 불안해하는 스타일이다.
추=겁도 많고 안절부절못한다. 배우들 인터뷰 모아놓은 책을 봤는데, 메릴 스트립이 나랑 똑같다는 걸 알고 위안을 얻었다.
둘이 연극에 함께 출연할 계획이 없는지 물었다. 추상미는 "예스(Yes)", 이석준은 "노(No)"였다. 이석준이 "(아내를) 다른 인물로 만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하자, 추상미가 눈을 흘겼다. "지금보다 더 시달릴 것 같아서지?"
▶《블랙버드》는 5월 2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썸걸즈》는 11일부터 설치극장 정미소. (02)766-3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