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미술, 세계의 눈 잡아야할 때"

입력 : 2008.04.07 23:21

스위스 출신 컬렉터 시그

1977년 엘리베이터 회사에 다니는 31세의 스위스 청년 울리 시그(Sigg)가 중국 정부와 합작 회사를 만들라는 명을 받고 베이징에 파견됐다. 청년은 중국 문화에 깜깜했다. 중국인 사업 파트너의 의중을 몰라 당황하기 일쑤였다. 궁리 끝에 청년은 중국 미술계를 순례했다. 이때만 해도 그에게 중국 미술은 중국을 들여다보는 '연구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중국 그림이 확확 변하는 게 보였습니다. 당에서 시키는 대로만 그리던 중국 작가들이 냉소와 애수가 듬뿍 밴 독특한 그림을 내놓기 시작했어요. '내가 새로운 조류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구나' 직감하고 본격적으로 수집했지요."
세계적인 중국 현대미술 컬렉터 울리 시그는 최근 한국과 일본 현대미술까지 관심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그는“시장이 작가를 평가하는 유일한 척도로 작동해선 안 된다”며“한국 미술 시장이 안정되게 발전하려면 평론가와큐레이터의 활동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세계적인 중국 현대미술 컬렉터 울리 시그는 최근 한국과 일본 현대미술까지 관심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그는“시장이 작가를 평가하는 유일한 척도로 작동해선 안 된다”며“한국 미술 시장이 안정되게 발전하려면 평론가와큐레이터의 활동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20년이 흐른 지금 시그의 컬렉션 2000여 점은 "초기부터 현재까지, 중국 현대미술의 전모를 망라한 백과사전적 컬렉션"이라고 평가 받는다. 기업인으로 성공한 그는 주중(駐中) 스위스 대사를 지낸 직후인 1998년 '중국 현대미술상(CCAA)'을 제정하는 등 중국 미술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하랄트 제만(Szeeman·1933~ 2005) 등 서구의 일급 큐레이터들을 중국에 초청해 중국 미술을 홍보하기도 했다. "중국 미술이 세계 시장에 진입하려면 우선 '시장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서구 큐레이터들 눈에 띄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중국 경제가 질주했다. 중국 현대미술은 압축 성장으로 혼란에 빠진 중국인의 내면과 현대사의 질곡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시그는 "신생 수퍼파워 중국과 '싸울 것인가, 껴안을 것인가' 고민하던 서구가 예술을 통해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중국 현대미술에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미술 붐이 얼마나 지속될지, 아시아 미술 붐의 견인차까지 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시그는 "앞으로 시장은 중국 미술에 대해 보다 냉정해질 것(selective)"이라고 말했다. 중국 미술이라면 덮어놓고 신선미를 느끼던 시절은 지났다는 얘기다. 중국 현대미술이 작품성으로 세계의 눈길을 잡아야 할 도전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뜻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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