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봉을 든 첼리스트 가야금 명인을 만나다

입력 : 2008.04.02 23:33   |   수정 : 2008.04.03 08:14

'새봄' 협연하는 장한나·황병기

2일 낮 서울 신당동의 뮤지컬 하우스 4층 연습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첼리스트 장한나(25)가 오른손에 든 것은 첼로 활이 아니라 지휘봉이었다.

"크레센도(점점 세게)는 항상 마음속으로 해주세요. 너무 길어지면 안되고요."

"플루트가 한 마리 학처럼 날아가야 하는데 방해를 받고 있네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과 졸업생을 비롯한 20대 단원 70여 명으로 구성된 디토 필하모닉과의 리허설에서 지휘자 장한나는 악장이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감사합니다"며 존댓말을 빼놓지 않았다.

지난해 데뷔 무대를 가졌던 '초보 지휘자' 장한나에게 이날 특별한 음악 손님이 찾아왔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72)씨가 자신이 작곡한 가야금 협주곡 〈새봄〉을 장한나의 지휘로 오는 5일 포스코센터에서 협연하기로 한 것이다. 첫 리허설에서 장한나가 "이 대목에서 가야금이 안 들리면 (악단의) 소리가 너무 큰 거예요"라며 협연자를 배려하자, 황병기씨도 악장이 끝날 때마다 "훌륭해" "완벽해"라며 지휘자를 격려했다.
장한나(가운데)의 지휘봉과 황병기(오른쪽)의 가야금이 만났다. 장한나와 황병기가 5일 포스코센터에서 열리는 황병기의 가야금 협주곡〈새봄〉의 협연 연주에 앞서 리허설 중이다. 2일 서울 신당동 뮤지컬 하우스에서.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장한나(가운데)의 지휘봉과 황병기(오른쪽)의 가야금이 만났다. 장한나와 황병기가 5일 포스코센터에서 열리는 황병기의 가야금 협주곡〈새봄〉의 협연 연주에 앞서 리허설 중이다. 2일 서울 신당동 뮤지컬 하우스에서.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국악과 서양음악, 가야금과 첼로, 70대와 20대라는 나이 차가 무색한 둘의 음악 우정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주회를 위해 귀국했던 장한나가 황병기씨와 함께 잡지 인터뷰를 한 뒤로 이메일 펜팔을 주고받고 상대방의 음악회를 서로 찾아가면서 우정을 키운 것이다.

황씨는 "한나양의 나이에 거의 세 곱을 해야 내 나이예요. 반 세기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처지에 한나양이 먼저 친구라고 부르긴 어렵겠지요. 그래서 제가 먼저 친구라고 불렀죠. 실제로도 친구 사이가 좋은 것이고."라고 말했다. 실제 둘이 있을 때는 "자네" "선생님"이라고 부른단다.

서로 다른 악기와 장르의 연주자가 하나의 무대를 꿈꾸게 된 계기는 "100% 우연"(황병기)이었다. 2003년 호놀룰루 교향악단의 초청으로 하와이에서 신년 음악회가 열렸을 때 전반부 협연자가 황씨, 후반부 협연자가 바로 장한나였다. 장한나의 부모님과 장한나, 황씨 부부가 거의 1주일간 같은 숙소에 묵으면서 같은 차에 타고 연주홀을 다니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지난해 지휘자로 데뷔한 장한나가 황씨에게 먼저 협연을 청했고, 황씨가 지난 1991년 작곡한 가야금 협주곡 〈새봄〉의 악보를 건네받아서 공부한 끝에 둘의 첫 협연이 성사됐다. 장한나가 "선생님의 작품은 고요하면서도 강인하고, 잔잔한 듯하면서도 역동감이 넘쳐서 어깨춤이 절로 나올 것 같다"고 하자, 황씨는 "장한나는 가냘픈 체구에 어린 나이에도 인생살이를 오래 산 것처럼 처절하고 깊이 있는 소리를 갖춘 것이 불가사의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장한나는 가야금의 소리를 익히기 위해 지난 2005년에는 직접 황씨의 집을 찾아가 1시간가량 황씨의 시범을 따라서 기야금의 연주를 듣고 배우기도 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렸던 그날, 황씨의 아내인 소설가 한말숙씨가 끓여준 수제비를 장한나는 말끔하게 비우고서 "한 그릇 더 주세요"라고 씩씩하게 외쳤다고 한다. 둘은 오는 5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리는 포스코 창립 4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새봄〉을 함께 협연한다. 무료 초청 음악회인 이번 콘서트는 이미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장한나의 지휘봉과 황병기의 가야금이 만났다. 2일 서울 신당동 뮤지컬 하우스 연습실에서 장한나와 황병기가 5일 포스코센터에서 열리는 황병기의 가야금 협주곡〈새봄〉의 협연 연주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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